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25: 해후 (2022년 6월 23일)

divicom 2022. 6. 23. 08:42

살아 있어 좋은 점 한 가지는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남의 어머니는 기억, 어머니 덕에 이번 주엔 두 번이나

귀한 해후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44년 만에 만난 신문사 후배는 그새 성공한 회사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 신문사에 견습기자로 들어와

머문 시간은 고작 6개월, 그때 함께 일했던 선배 중에

두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저라고 했습니다.

 

으리으리한 호텔 식당에서 아름답고 맛있는 밥을 먹고

그가 사준 고급 카스텔라를 들고 돌아오는데 참 기뻤습니다.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북악도 아름다웠지만 출세가 바꾸지

못한 그 얼굴의 맑음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사람에겐 아홉 개의 얼굴이 있다고 하고 저는 그의 얼굴 중

하나를 보았을 뿐이지만 그는 코끼리보다는 한라산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코끼리는 부분 부분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한라산은 어느 부분이나 아름다울 테니까요.

그와 만난 다음날은 하지... 전날의 기쁨 덕에 더운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제 또 한 번의 반가운 만남. 33년 전 처음 편집자와

저자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하다 만난 친구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아름다워 보고 있는 내내 웃음이 나왔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해 불평 같은 얘기를 할 때조차 그에게선

인생을 아는 사람의 평화가 흘러나왔습니다.  

 

오래된 한옥 식당과 야외 카페의 풍경은 전전날 본 북악처럼 아름답고

그가 손수 만들어 들고 온 오디청과 편집자로 복귀해 만든 책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기억 어머니가 또 다시 해후를 낳아주실지는 알 수 없는 일,

지금은 오직 희망합니다. 제가 두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았기를...

우리 셋 모두 시간의 장난을 이겨내기를!

 

용덕 님, 정은 님, 감사합니다!

보잘 것 없는 이 사람의 이틀이 두 분 덕에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정은 님이 만든 책의 한 문장, 감사의 뜻으로 적어둡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과 같다.

(마태오 복음 25:40)" 

                                              --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북루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