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로린 마젤(2013년 2월 8일)

divicom 2013. 2. 8. 18:29

어젯밤 오랜 친구 덕에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습니다. 평소엔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데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거라고 해서 승용차를 타고 간 게 화근이었습니다. 효자동에서 젊은 친구 한 사람을 태우고 예술의 전당을 향해 출발한 게 오후 6시 30분, 연주회가 8시에 시작하니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는 길마다 꽉꽉 막히더니 남산3호터널 1.27킬로미터를 통과하는데 20여분이 걸리고 터널 끝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도 거북이 걸음이었습니다. 1부에서는 멘델스존을 연주한다고 했는데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발 휴식 시간에라도 도착하여 2부에 연주하는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장에 버리다시피 하고 달려갔더니 로비에는 우리처럼 늦게 와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서성이고 있고, 막 1부가 끝났는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콘서트홀 밖으로 흘러넘쳤습니다. 2부라도 제대로 감상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좌석을 찾아 들어가니 조금 전 길에서 고생한 것은 다른 세상 얘기 같았습니다. 


곧이어 12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와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이 '영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영웅'을 누차 들었었지만 CSO의 연주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연주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그렇게도 완벽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든 셋의 지휘자 로린 마젤 씨는 꽤 자주 지휘대에 설치해놓은 지지대를 붙잡아 노령의 힘겨움을 표시했지만 그와 CSO가 들려주는 음악은 힘차고 자유로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의 취약점으로 지적되곤 하는 관악기 파트가 어찌나 훌륭한 소리를 내는지 퍽 부러웠습니다.


'영웅'이 끝났을 때 마에스트로 마젤이 무사히 연주를 마쳐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열렬한 박수가 그치지 않았고, 마침내 마젤 씨는 다시 또 다시 지휘대에 올라 두 곡의 앙코르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저는 클래식에 문외한이라 곡명은 모르면서도 '영웅'보다 더 좋았습니다. 동행들의 얘기를 들으니 첫 곡은 바그너, 두 번째 곡은 헝가리 무곡이라 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박수를 쳤는지 팔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결국 마지막 곡에선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습니다.


CSO와 마젤 씨만큼 감동적인 건 콘서트 홀을 가득 메운 관객이었습니다. 연주자의 수준이 높아서인지 관객의 수준도 제가 만나본 관객들 중 최고였습니다. 물론 악장 사이에 참고 있던 기침을 풀어내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심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도 복잡했지만 황홀한 음악과 박수 소리로 귀를 씻은 후여서인지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늦은 시각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려 못 마시는 맥주를 한 잔 마시고 귀가했습니다.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째 저를 괴롭히던 어깨 통증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아무래도 어제 박수를 열심히 쳐서 통증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이래저래 CSO와 로린 마젤 씨를 영영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젤씨, 부디 건강하세요! 시카고 심포니, 감사합니다! 어제 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콘서트 표를 구해준 친구여, 이 빚을 어찌 갚는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