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층간 소음 분쟁 해결 (2013년 2월 11일)

divicom 2013. 2. 11. 12:13

위층에서 가져온 한라봉을 먹으며 위층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 두 아이는 참 귀엽고 활발합니다. 때로는 너무 뛰어 천장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아이들이 뛰지 않으면 아픈 거나 아닐까 염려가 됩니다. 처음 저 가족이 이사와서 아이들이 뛰기 시작했을 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놀러 오는 날이면 머리 위에서 말이 달리거나 제 머리를 둔기로 계속 두드리는 것 같아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을 싸들고 동네 카페로 간 적도 여러 번입니다.


참고 참던 어느날 그림책 한 권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벨을 누르니 한참만에 "누구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아래층 사람이에요."하니 상대방이 '흑'하고 숨을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곧 문이 열리고 아이들의 어머니인 듯한 부인이 나왔습니다. 부인의 뒤에 귀엽게 생긴 두 아이가 눈을 빛내며 서 있었습니다. 부인에게 그림책을 건네며 아이들이 뛰는 소리에 너무 머리가 아파 왔다고 말하자 부인은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뛰면 아줌마 머리가 많이 아프니 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은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다음날이 되자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뛸 때마다 올라가서 하소연하고 싶어도 '아이들이 아프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참다가 너무나 심한 날에만 그림책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이웃으로 산 지 벌써 두어 해가 되었습니다. 위층에선 위층대로 아래층 사람들을 생각해 거실 바닥 전체에 두툼한 매트를 깔았습니다. 그러나 쿵쿵 소리를 무엇으로 감싼 것 같을 뿐 매트가 해결책이 되진 못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매트는 아마도 아이들의 발 아래 조금씩 납작해지겠지요.


이번 설 연휴에 '층간 소음'으로 인해 두 사람이 죽고 방화도 발생했다고 하는데, '층간 소음'으로 인한 비극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입니다. '싸움' 대신 '대화'를 하는 것이지요. 대화가 성립되려면 우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 그 앙금이 풀리지 않는 것이 일본의 진실한 사과가 없어서인 것처럼,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관계의 진전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층간 소음'이 발생할 때 가해자는 위층 사람, 피해자는 아래층 사람입니다. 위층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 합니다. 아래층 사람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 사과해도 좋고, 아래층에서 찾아왔을 때 사과해도 좋습니다.


사과를 받은 아래층 사람은 아이들을 '소음유발자'가 아닌 '아이들'로 보아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뛰어 놀며 자랍니다. 그러나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 아이들이 나가서 놀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실내에 갇힌 아이들은 실내에서라도 뛰어 놉니다. '뛰어 노는' 것은 아이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니까요. 아픈 아이는 뛰기를 멈추고 얌전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뛰어 논다는 건 그 아이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아이의 부모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이번에 살인 사건과 방화 사건으로 끝난 층간 소음 분쟁에서는 '사과'도 '대화'도 없고 싸움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위층과 저희 집 사이엔 싸움 대신 사과와 대화가 있고,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이 있습니다. 한라봉은 언제나 맛있지만 위층에서 보내온 한라봉은 더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