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백무산 씨의 ‘예배를 드리러’를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는 2012년 3월에 출간된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요일엔 이곳저곳으로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개는 인간보다 힘이 세 보이는 신을 찾아 가지만 시인은 ‘시골 장거리’로 갑니다. 나만큼 힘없는 동료 인간들, 그들의 삶을 가능케 하는 노동이 있는 곳으로, 진짜 사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지요.
‘오늘의 노래’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중 ‘하바네라(Habanera)’를 틀어드렸습니다. 조수미 씨도 부르고 Agnes Baltsa도 불렀지만 오늘은 신영옥 씨의 음성으로 들려드렸는데, 신영옥 씨의 목소리는 너무 고와서(?) 이 노래에는 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메조 소프라노인 Agnes Baltsa가 부른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의 노래를 두루 들어보시지요.
예배를 드리러
시골 장거리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다
일용할 양식들이 흙 묻은 발을 막 털고 나온 곳
목숨의 세세한 물목들이 가까스로 열거된 곳
졸음의 무게가 더 많이 담긴 무더기들
더 잘게 나눌 수 없는 말년의 눈금들
더 작게 쪼갤 수 없는 목숨의 원소들
부스러기 땅에서 간신히 건져올린 노동들
변두리 불구를 추슬러온 퇴출된 노동들
붉은 내장들 엎질러져 있고 비늘이 벗겨지고
벌건 핏물에 담긴 머리통들이 뒹구는 곳
낡은 궤짝 제단 위에 염장을 뒤집어쓰고 누운 곳
보자기만한 자릿세에 졸음의 시간들이 거래되는 곳
최소 단위 혹은 마이너스 눈금이 저울질되는 곳
저승길 길목 노잣돈이 욕설로 에누리되는 곳
시간이 덕지덕지 각질 입은 동작들 추려서 아이들 입에
한술이라도 더 넣어주고 가고 싶은 애간장이 흥정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선한 예배당에
까무룩 햇살 속으로 사라지는 계단을 밟고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다
‘하바네라’는 사랑을 노래하는 아리아입니다.
"사랑은 반항적인 새라서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요...
위협해도 기도해도 오지 않아요...
사랑은 집시의 아이라서 법이라곤 모른답니다.
날 사랑하지 말아요, 그래야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요...
그 새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날아가버리지요...
사랑은 기다릴 땐 오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면 어느새 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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