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성냥 (2013년 1월 27일)

divicom 2013. 1. 27. 11:07

오늘 아침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이세룡 시인의 성냥’을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는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승희 시인은 자신을 매혹시킨 한 편의 시로 성냥을 꼽으며이세룡 시인을 한국 시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부릅니다그의 시에 웃음과 눈물과 꿈과 사랑과 비판과 재미있는 정신분열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시인은 영화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세계를 불태우려고/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입니다. 말 그대로 세계를 불태우진 않아도 세계를 놀래키려고, 최소한 자신이 속한 세계가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며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잘 오지 않고 평생 기회를 엿보기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도 있습니다. 꿈은 꿈으로 남고 현실이 되지 못하는 삶이 아주 많습니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인간만 위대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이 되지 못하는 꿈을 끝내 버리지 않고 죽는 날까지 지니고 사는 사람도 위대합니다.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서 개츠비 앞에 '위대한'을 붙이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이겠지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하지만, '바보'가 '영웅'인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새해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갑니다. 그새 한 달이 갔느냐고, 한 달을 허송했다고 탄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은 없습니다. 부디 그 흔적이 우리를 조금 더 큰 사람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오늘의 노래'는 진미령 씨가 부른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을 골랐습니다. 딸로 태어나 초경을 하고 자라면서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마침내 쉰이 넘어 자신의 딸을 출가시키는, 여자의 일생에 관한 노래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여성'에 머물지 않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 즉 '우먼에서 휴먼으로' 가는 것이지만, 죽는 날까지 '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흔합니다. 곡은 경쾌하지만 듣다 보면 슬퍼지는 노래, 아직 '여자의 일생'엔 기쁨보다 슬픔이 많은 걸까요? 


 

성냥

 

감옥 속에는 죄인들이 가득하다.

머리통만 커다랗고

몸들이 형편없이 야위었다.

 

세계를 불태우려고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다.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을 안겨주시고
어머니는 다 큰 여자가 되었다고
너무나 좋아하셔
그때 나는 사랑을 조금은 알게되고


어느 날 남자친구에게 전화 왔네
어머니는 빨리 받으라고 하시고
아버지는 이유 없이 화를 내시며
밖으로 나가셨어
그때 나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어

내일이면 나는 시집을 간다네
어머니는 왠지 나를 바라보셔
아버지는 경사 났다면서
너무나 좋아하셔
그때 나는 철이 없이 웃고만 서있었네

웨딩마치가 울리고 식장에 들어설 때
내 손 꼭쥔 아버지 가늘게 떨고 있어
난생 처음 보았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버지 모습
나도 같이 주저앉아 울고 싶었어


내일이면 나는 쉰이라네
딸아이가 벌써 시집을 간다
우리 엄마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그 옛날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것 같아
자꾸 바라보는 나의 딸아이 모습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란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 거란걸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거야
그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거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