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사지 않았습니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니 더위를 견디자는 생각, 땡볕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내에 있으면서 에어컨을 켜는 건 미안하다는 생각, 에어컨을 가진 집보다 갖지 못한 집이 많다는 생각, 전기 사용량 증가가 원자력발전을 정당화시키는 빌미로 쓰인다는 생각...
오늘 자유칼럼에 실린 김수종 선배의 글에는, 폭염은 화석연료 사용이 초래한 기후온난화의 결과이며 앞으로 더욱 심해질 거라고 나와 있습니다. 편리의 추구로 자연을 성나게 하고 에어컨과 같은 기구로 자연과 싸우려 하는 인류... 과연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김 선배의 글 한 번 읽어보시지요.
섭씨 35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됩니다. 정부 쪽의 비상(非常)은 보건 분야가 아니라 에너지 분야에 먼저 걸렸습니다. 에어컨 풀가동으로 전력 수요가 하늘을 찌르듯이 올라가니 전력 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자칫 잘못되면 며칠 전 인도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은 대 정전(Black-out)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절전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내도 대부분 시민들은 눈앞에 닥친 더위를 못 참아 에어컨을 켭니다. 정부는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 등 통제가 쉬운 업체에 보조금을 주며 안전 수준의 예비전력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미국도 폭염과 가뭄의 재앙에 직면해 있습니다. 워싱턴D.C.를 비롯해서 여러 지역에서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어서면서 인명피해가 잇따르고, 강물의 온도가 36도까지 이르러 물고기들이 폐사하는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뭄으로 옥수수 등 농작물의 작황이 엉망이 되어 곡물 선물가격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미국 곡물에 의존하는 전 세계 식량 수입국은 긴장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 폭염은 어쩌다 한 번 발생한 현상일까요? 저명한 과학자 한 사람이 이 질문에 대답하고 나섰습니다. 기후변화 권위자인 제임스 한센 박사는 지난 4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전 세계적으로 폭염은 더욱 많이 발생하고 더 난폭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여름 폭염이 발생하는 지역이 1980년에는 지구 표면의 1퍼센트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3퍼센트로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올해 71세인 한센 박사는 평생 기후변화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내에 고다드 연구소(GISS)가 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산하에 있는 많은 관련 연구기관 중 하나로 21세기 지구 기후 변화에 연구를 집중하는 곳입니다. 고지질학, 인공위성 관측, 대기와 해양 조사 등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기후변화 모델을 만듭니다. 한센 박사는 1981년 이래 30여 년간 이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화석연료를 쓰는 인간이 지구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1988년 미 상원 기후변화 청문회에서 증언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기후변화의 문제점을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과학적 확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근래 환경문제에 행동가로 시위에 참가하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몇 차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한센 박사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1988년 상원 청문회에서 기후변화의 속도를 너무 낙관적으로 잡은 것은 잘못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지난 60년간의 기온을 새로이 분석한 결과 극한적인 여름 폭염 빈도가 급격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에도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센 박사는 여름 폭염의 증가를 기후변화 외의 다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한센 박사는 여름 폭염의 증가를 설명하기 위해 ‘기후 주사위’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어떤 여름은 유난히 덥고 어떤 여름은 서늘합니다. 또 어떤 겨울은 춥고 어떤 겨울은 따뜻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런 변동성입니다. 이런 자연스런 상태에서 6면체의 ‘기후 주사위’를 굴리면 2면은 보통의 여름 날씨가 나오고, 2면은 보통보다 더운 여름 날씨가 나오며, 나머지 2면은 서늘한 여름 날씨가 나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 요인이 들어가면 ‘기후 주사위’가 보이는 여름 날씨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겁니다. 즉 1면은 보통 여름 날씨를, 또 다른 1면은 서늘한 여름 날씨를 보이지만, 나머지 4면은 뜨거운 여름 날씨를 보인다는 겁니다. 여름 폭염의 빈도가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는 겁니다.
한센 박사는 충고합니다. 기후변화가 발생해도 평년보다 서늘한 여름이 나타나거나 전형적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가 가끔 발생하는데 이런 현상을 갖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려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후 주사위’의 6면 중 4면을 차지한 여름 폭염의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극한적인 폭염은 더 자주 발생하고 기온도 더 올라갈 것이라는 게 한센 박사의 예측입니다.
한센 박사의 경고를 듣고 있자면 인류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에 40도의 폭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폭염이 더욱 빈번해지고 기온도 올라가면 견디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모두가 에어컨으로 해결하려 덤빌 것입니다. 전력공급을 늘리라고 아우성치면 화력발전소든 원자력발전소든 마구 늘려야 할 것입니다. 에어컨을 많이 쓸수록 도시 공기는 더워져서 더 많은 시간 에어컨을 돌리게 되고, 이산화탄소 증가로 지구 기온은 더욱 올라갈 것입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더 많이 가동해야 하고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에어컨은 대증요법에 불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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