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 즉 정부가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라고 출판사들에게 '권고'하여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한때는 전세계에서 시를 가장 즐겨 읽던 이 나라에서 시가 이렇게 주목을 받기는 참 오랜만입니다.
오늘 한겨레신문 1면엔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비친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실렸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신문 1면에 한 편의 좋은 시가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시로 시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로 시를 빼라고 권고했다지만 쓴 사람에게 명함이 생기거나 그 사람의 명함이 바뀐다고 그 사람이 예전에 쓴 시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가 나라를 팔아먹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가 전에 썼던 시의 운명도 그의 운명을 따라가야 하겠지만요.
제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간단합니다. 도종환 씨가 여당 국회의원이었어도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라고 권고했겠습니까? 평가원은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 대답하겠지요, '아니오'라고. 그러면 권고를 철회하십시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고치면 됩니다.
시나 시인과 싸우는 정부가 시민의 사랑이나 존경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는 정의의 언어이고 위로의 언어이며, 시인은 시민을 대신해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민이 부정한 세상에서 지쳐 주저앉으려 할때, 시인은 시민을 위로하며 '그래도 정의!'라고 상기시키는 사람입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또한 그런 시일 겁니다. 한겨레신문 1면을 장식한 시, 한 번 읽어보시지요.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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