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먼에서 휴먼으로> 서평 (2012년 2월 24일)

divicom 2012. 2. 24. 22:28

1월 중순부터 묵언해왔는데 존경받는 언론인 차미례 선생님이 오늘 자 내일신문에 제 졸저에 관한 서평을 써주시어 옮겨둡니다. 선생님은 중앙일보와 한국경제신문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시고 문화일보 문화부장등을 역임하셨으며, 현재는 내일신문에 날카롭고도 위트있는 칼럼을 쓰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글은 자주 읽었지만 직접 뵌 적은 없는데 제 책에 대해 친절히 평해주시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일신문 2012년 2월 24일자  ‘주말을 여는 책’ 


<우먼에서 휴먼으로> ‘내 안의 나’를 불러낸다

 

"역사란 남자들의 것"이라서 히스토리(history)가 되었으니 이제는 '허스토리(herstory)'로 써야한다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역사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성을 중심에 두고 역사를 다시 쓴다해도 그것은 결국 인류의 역사가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여자이거나 남자이기 보다는,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삶에 대한 자각과 정체성의 깨달음, 타인과의 소통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 '우먼에서 휴먼으로'란 제목은 '맨에서 휴먼으로'나 같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저자 김흥숙씨는 인생의 긴 후반전을 앞두고 우리가 빨리 깨달을수록 좋을만한 인간 공통의 중요한 명제들을 나름대로 명쾌하게 정리해놓았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잘 나이들기 위해 알아야 할 휴먼 12계명'이다. 특별히 과장하거나 현학하지 않고 재치있는 책 제목에 걸맞게 독자가 공감할만한 솔직한 표현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인간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살아갈수록 좋아지는 사람, 살아갈수록 나빠지는 사람)는 필자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책을 들자마자 마지막 장까지 손을 떼지 못했다.

 

남-녀 아닌 '제3의 성'을 향하여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속한 성, 즉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여자니까, 남자니까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지시에 휘둘리며 사는 게 인생이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부차적인 두 번째 성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한 프랑스의 시몬느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출간한 것이 1949년, 미국의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단 등 여성주의자들이 남녀불평등 철폐를 부르짖고 나선 것이 1960년대다.

 

저자는 이제 여성적 또는 남성적 삶을 벗어나 멋진 여자나 멋진 남자보다는 '멋진 인간'이 되기를 추구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처럼 봉건주의의 유습과 뿌리 깊은 남녀차별 관습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의 활동과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경우에는 양성을 아우르며 초월하는 통합적 인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타고난 잠재력과 본인의 열망에 관계없이 사람을 규정하는 여자의 삶, 남자의 삶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삶을 목표로 하는 순간 시야는 넓어지고 사고는 깊어지며 무엇이 중요하고 사소한지 판단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책의 구성은 버지니아 울프, 모파상을 비롯한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불평등시대 여성들의 질곡을 다룬 '프롤로그', 자녀교육문제와 여성의 자아인식, 노화에 대한 태도 등을 비판적으로 다룬 '카페의 여인들' 여성의 사회진출과 결혼 이혼문제를 다룬 '결혼과 비혼‘ 이른바 불혹의 나이에 이른 여성들과 부부 문제를 다룬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의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자유인이 되는 지름길 제3의 성을 다룬 '우먼에서 휴먼으로'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우먼'은 겉모습 '휴먼'은 본성

 

사람들은 늘 무엇을 찾아 길을 떠나고 집밖을 헤맨다. 불교 선종화의 심우도(尋牛圖)의 소년처럼 소 등에 앉아 소를 찾는다. 그러나 우먼에서 휴먼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설 필요는 없다.

 

우먼이 내 겉모습이었다면 휴먼은 내 본성이다. 평생 갖고 있었으나 그런줄 몰랐던 내 안의 나, 겉모습을 키우느라 잊고 있었던 내 진면목이다. 그러니 찾아나설 대상이 아니라 불러내야할 대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대신에 타인들 눈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회한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을 어떻게 성을 초월한 휴먼으로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은 12가지를 권한다.

 

1. 내 앞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 중에서 정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한다.

2. 이 일이 옳은가, 의미 있는 일인가를 자문해본다.

3.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구별한다.

4. 질투하지 않고 남의 잘못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5. 남과 내가 다름을 인정한다. 세상은 용광로가 아니고 샐러드볼이다.

6. 말을 줄이고 보는 것을 더 잘 본다.

7. 두려움과 걱정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8. 한결같은 태도를 갖는다.

9.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한다.

10.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11. 몸과 마음의 아픔을 분리시켜 관리한다.

12. 죽음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자주 이야기한다.

 

얼핏 보기에는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는 이런 일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를 바꾸는 일이어서 쉽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관습을 바꾸기 힘들어하고 그동안 유지했던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먼에서 휴먼으로 진행하는 이 책의 편집 기획은 실은 어느 부부의 냉전사태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삶이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부부지간 뿐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와의 불화를 중재하는 것.

그래서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 정치적 외풍이 극심하고 사회와 개인의 가치가 무너져내리는 요즘 같은 시절일수록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