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전까지도 이 나라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였지만 이젠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출세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자수성가의 대명사였던 고시 합격자 중에도 저소득층 출신을 찾기는 어렵고 명문대 수석 합격자가 학교 수업만 충실히 했다는 기사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소득의 양극화가 교육 격차를 부르고, 교육 격차는 부와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일보에 실린 ‘2012 한국사회에 묻다’ 시리즈에는 잘사는 아이들이 스펙 쌓을 때 가난한 학생들은 학비 마련도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른다는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지난해 사립 명문대에 입학한 이승희(가명ㆍ21ㆍ여)씨는 최근 아버지를 여읜데다 어머니마저 편찮으셔서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과외부터 패스트푸드 점원까지 매 학기 4, 5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세와 생활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합니다. 차상위계층이라 장학금이 일부 나오지만 일정 성적(평점평균 3.0 이상)을 유지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부족한 잠과 부실한 식사로 편도선, 장염 등 잔병에 시달리다 기말고사를 잘못 치러 한 학기를 마친 후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8월 서울 모 여대를 졸업한 박정현(가명ㆍ23)씨는 법학전문대학원 시험에 한차례 낙방했으나 지방에서 외과병원을 하는 아버지 덕에 걱정 없이 학원을 다니며 올 8월로 예정된 시험에 재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대학 시절에도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없고, 임대료 관리비 등을 합쳐 월 100만 원 이상 드는 고급 원룸에 거주하며 해외연수, 요가, 중국어, 인턴활동 등 스펙 쌓기에만 열중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니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등학교 때도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엔 더더욱 해야 했습니다. 종일 도서관에 있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은 도서관에 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경제적 어려움 덕에 하기 싫은 일을 해내면서 조금 더 강한 인간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힘겨웠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완전히 끊겼다고 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외금지 기간(1980~2000년) 동안 중ㆍ고교를 다닌 세대가 하위계층에서 상위계층으로 올라선 확률은 지금보다 7.3퍼센트 포인트 높았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대 입학생의 부모 직업 변화에서도 확인되는데, 지난해 신입생 중 아버지가 농ㆍ축ㆍ수산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전체의 1.7퍼센트로 1998년(4.7%)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으며, 아버지가 고졸인 입학생의 비율도 2004년 24.1퍼센트에서 2010년 16.7퍼센트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우리가 경원하는 독재자 전두환 씨가 한 가지 잘한 일은 과외 금지입니다. 그 조치가 실시되자 과외를 받지 못하던 제 막내 동생의 성적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과외 덕에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덕택에 동생은 좋다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박순용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건강한 사회일수록 계층이동 통로가 열려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부의 편중이 심해 계층이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부유한 사람들이 권력까지 가지고 있어 오늘의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에 나온 박정현 씨 같은 사람들이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자신과 같은 사람들 위주로 법을 집행할 게 뻔합니다.
한마디로, 이제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동등하게 가진 것은 투표권뿐입니다. 올해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투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용옥 선생이 교육방송(EBS) ‘중용’ 강의를 끝내는 날 투표를 잘하라고 열변을 토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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