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에 새벽잠을 설쳤습니다. 전에는 해가 떠야 울던 매미들이 이제는 새벽부터 울어댑니다. 앞 창문 뒤 창문 양쪽에서 울어대니 일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상에 나왔는데 지상이 온통 비투성이라 짝짓기도 못하고 입추를 맞은 매미들,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욕할 수도 없습니다.
하늘은 흐린데 베란다는 환합니다. 보라색 꽃을 마흔 송이쯤 피운 아메리칸 블루와 빨간 꽃 스무 송이를 달고 있는 꽃기린 덕입니다. 구파발인가로 동무들을 따라가 삼천 원인가를 주고 사온 아메리칸 블루, 도자기 화분을 사며 덤으로 얻어온 꽃기린.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경제적인 삶일까요. 그에 비해 저는 얼마나 복잡하며 비경제적이고 아름답지 못한 존재일까요.
꽃들의 얼굴을 들여다 보다 이성복의 시 '꽃 피는 시절·1'을 떠올립니다. 시집 <남해 금산>을 엽니다. 시집에서 작게 접힌 편지 한 장이 떨어집니다. 1987년 제 막내아우가 제게 시집을 선물하며 함께 보낸 편지엔 제 건강을 기원하는 말이 가득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몸이 부실하여 주변에 염려를 끼치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아우의 사랑 덕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요, 아프고, 괴롭고, 그립고, 조바심하다 간간이 사랑에 위로받는... 아래 시의 행과 연 모두 시집에 있는 그대로 옮겼습니다.
'꽃 피는 시절·1'
그 사흘 꽃들은 괴로움과 잠자고 제 그림자에 얼굴을 묻었
다 꽃이 필 동안의 잔잔한 그리움을 지우고, 조바심을 지우고
꽃들이 흔들리는 경계 안으로 더 짙은 산그늘이 필요했다
줄기를 버리고 잎새를 버리고 떠도는 괴로움이 날벌레보다
가벼울 때
마주 보는 이여,
고이 멎는 그대 입김에도 얼마나 아픈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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