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호밀밭의 파수꾼 (2011년 8월 1일)

divicom 2011. 8. 1. 08:11

제 컴퓨터는 습기에 매우 예민합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은 켜지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본체의 버튼을 여러 차례 켰다 꺼 보거나 전원 스위치를 켰다 껐다 반복해야 켜지곤 합니다.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면 짜증이 납니다. 언젠가 고백했듯 컴퓨터에게 욕하며 본체를 두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컴퓨터에게 화를 내고 나니 그러는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화내는 것을 무엇보다 경멸하는 제가 컴퓨터에게 화를 냈으니까요.

 

그 다음부터 컴퓨터를 킬 때는 한 손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 본체 옆에 앉습니다. 버튼을 누르면서 책을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책의 재미에 빠져 컴퓨터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게 오히려 반갑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컴퓨터가 켜진 후에도 못 본 척 책을 좀 더 읽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입니다. 오늘 읽은 페이지엔 주인공이 나이트클럽에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술을 마시고 싶지만 미성년임을 알아본 웨이터는 술을 주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콜라를 마시며 옆 자리에 앉은 여자들에게 접근합니다. 세 사람 모두 아주 못 생겼지만 춤을 추고 싶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중 한 사람과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추고 자신은 콜라를 마시면서 세 사람에겐 술을 사주고... 그러다가 여자들은 떠나고 나이트클럽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옵니다. 클럽을 나올 때 주인공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재미있습니다. 아래에 옮겨두니 한 번 읽어보시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책보다 좋은 친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유지할 수 있게 혹은 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친구이니까요. 컴퓨터가 켜지지 않을 때도 그렇지만 밖에 누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책 한 권은 갖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늦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물론 그럴 땐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는 조금 덜 재미있는 책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날 사람이 왔을 때 그 사람을 반길 수 있을 테니까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장소설이라는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이 친구 때문에 책 밖의 우정에 금이 가면 안되니까요.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트클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술을 코가 비뚤어지도록 사 마실 수 있거나 아주 죽여주는 여자와 함께라면 몰라도.

 

There isn't any night club in the world you can sit in for a long time unless you can at least buy some liquor and get drunk. Or unless you're with some girl that really knocks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