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산 지 반백 년이 넘었는데도 낯선 것이 많습니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자꾸 늘어납니다. 한 나라 사람들의 얼굴도 자꾸 낯설고 늘 다니는 길, 늘 다니는 버스도 낯설어 내 나라 내 동네에서 여행자처럼 서툴게 행동하는 일이 많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끔 그런 기분을 토로하며, 아무래도 나는 지구 아닌 다른 별 출신인 것 같다고 농담을 하곤 하는데 사실은 농담이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마추어, 제 인생 또한 '아마추어 인생'입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들춘 시집에서 이 아마추어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시 전체를 옮겨두니 그 중 어떤 문장인지 한 번 유추해보시지요. 이성선 시집 <산시(山詩)>에서 인용합니다.
고향실古香室
낙산사落山寺 회주스님이 거처하시는 집에는 누가 언제 써놓았
는지 고향실古香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게
조금 서툰 듯 그러나 세월이 와서 오래 만지고 놀아 완성시킨 글
씨가 그 앞에 나를 세워 꽉 묶어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제대로 서툰 것은 오래 이루어지는가. 오래 완성되어야 저렇
게 알 수 없는 형상의 골짜기로 내 발을 끌어들이는가
죽지 않는 자는 누구일까. 무섭다. 시간의 뼈의 허물어짐. 가
랑잎 웅크린 듯 별 아래 물닭 날 듯 고졸古拙한 향기. 저 수만 근
적막
위의 시에서 제 눈을 끌어 당긴 문장은 '제대로 서툰 것은 오래 이루어지는가'입니다.
낯선 곳의 서툰 여행자인 저도 오래 만져주는 세월 덕을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다시 희망을 품고 낯선 잠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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