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가끔 '나는 가수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을 보긴 했지만 프로그램 자체를 본 건 지난 일요일이 처음입니다. 일요일 초저녁 텔레비전에선 연예인들이 우루루 모여 떠들곤 했는데 노래 잘하는 가수 여럿이 한 자리에 나온 것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소위 아이돌 가수들의 천하가 되어버린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에 김건모,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윤도현, 이소라, 정엽이 출연한 겁니다. 프로그램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잘한다는 공통점에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특징까지 지닌 가수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니까요. '나는'과 '가수다'라는 말 사이에 '연예인이 아니고'라는 말이 생략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수도 연예인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요즘 연예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은 가수라는 이름을 잊은 것 같습니다.
탈락의 공포가 곁들여져서인지, '나는 가수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인지, 일곱 명의 가수들은 참으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듯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무대를 채우는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달랐습니다.
제가 본 것은 '나는 가수다'의 3회분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김건모 씨는 청중평가단의 평가에서 꼴찌인 7위를 하여 탈락되게 되었습니다. 그는 손꼽힐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이지만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노래를 마치고 인사하느라 허리를 굽힌 순간 입술에 립스틱을 잔뜩 바른 게 문제였습니다. 탈락이 발표되자 본인도 본인이지만 함께 출연했던 후배 가수들이 더 놀라 어쩔 줄 몰라하다가 김건모 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라고 간청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MBC제작진은 회의를 거친 끝에 김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기로 함과 동시에 다음부터 7위를 하는 가수에게는 언제나 재도전 기회를 주기로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김건모 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준 게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영희 피디가 얘기한대로,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탈락'에 있지 않고 실력있는 가수들을 자극하여 우리 가요의 수준을 높이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도전 기회를 김건모 씨에게만 주면 형평에 어긋나겠지만 7위를 하는 가수 누구에게나 준다면 공평할 것입니다.
이번 일은 '개그 본능'을 억제하기 힘들어 하는 김건모 씨는 물론 다른 출연자들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청중이 그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진지한 가수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제작, 방영되는 것이라면 김건모 씨의 '개그'는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우리나라 프로그램 중에서도 '개그콘서트' 같은 데서 그렇게 했다면 큰 박수를 받았겠지요. 그러나 '나는 가수다'는 진지한 가수의 진지한 대중음악이 홀대받고 있는 풍토에서 그것을 바꿔보자고 만든 프로그램인 만큼, 청중평가단 또한 아주 진지했던 것이지요.
비난하는 목소리에 신경 쓰지 말고 '나는 가수다'를 계속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방영해주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나는 가수다'에 참여하는 가수들에게 감사합니다. '탈락'이 가져올 무안함, 부끄러움, 공포 등을 무릅쓰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가 출연료보다는 '가요의 힘'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몸짓, 비슷한 목소리의 아이돌들에게 질린 대중음악팬들에게 '가수의 힘'과 '대중 가요의 힘'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다른 방송들들도 MBC에게서 배워 노래 잘하는 가수들의 목소리를 황금시간대에 내보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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