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여행하고 있는 젊은이가 처음으로 가 본 경주와 광주의 인상을 적어 보내왔습니다. 비록 개인의 인상기이긴 하나 그 속에 새길 만 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옮겨둡니다. 참고로 이 젊은이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떤 종교의 신자도 아닙니다.
"광주의 밤입니다. 어제는 밤 늦게 도착해서 근처의 식당에 간 것 말고는 한게 없습니다. 물론 그 식당의 음식만으로도 아..전라도구나..하는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었지요. 오늘 점심은 송정리에 가서 먹었습니다, 떡갈비로 유명한 곳이라고 어젯밤 토박이 아줌마에게 들었기에 가 본 것이지요. 과연 떡갈비는 맛있었고, 인심도 좋았습니다. 재래시장이 있어서 구경했는데 아주 재밌었습니다. '몬도가네'가 따로 없는 풍경들.. 홍어가 많았는데, 칠레산이 제법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시장 구경을 마친 후 지하철을 타고 전남도청(구 도청)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송정리역(지하철)의 나이어린 역무원이 아주 불손한 태도로 문화전당인가..하는 역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알면서도 재차 확인할 겸 '구 도청'에 가려면 어디서 내리냐니까,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는지 '전남도청'에 가보려면 여기서 내리라고 알려주는데, 표정이며 말투까지 아주 못배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주에서는, 남자는 친절하고(예상과 달리) 여자들이 제법 무뚝뚝하거나 쌀쌀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숙박료는 거의 광주의 1.2~2배 수준이고 물가는 광주가 조금 더 비쌉니다. 광주는 아주머니들이 좀 더 따뜻한 느낌이고, 남자들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어딜가나 유흥주점과 '노래방'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다들 노래부르는 걸 엄청 좋아하는지, 피씨방, 편의점 찾기는 어렵습니다.
금융의 거리라는 금남로는 명동의 기능과 역삼동의 분위기가 짬뽕된 느낌인데, 광주일고(광주제일고)와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단 한 곳의 PC방, 편의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대로변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거겠지요. 반면에, 금융건물(?)외 대로변의 건물들로부터 한 블럭 안쪽으로 들어가면 롯데백화점 뒤쪽(금남로5가)으로 성매매지역이 있어서 깜짝 놀라 조심조심 벗어났습니다.
경주에 있는 동안엔 빨간 십자가가 보이지 않고, 건물들이 매우 낮아 하늘이 가까이 있어 참 좋았습니다.
특히나 경주빵 따위를 판매하는 건물들 너머로 고분(천마총 외)의 봉긋한 이마가 들쑥날쑥 보이는 것이
왠지 귀엽고 따뜻한 맛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광주는 고속버스터미널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도시의 입구에서부터 빨간 십자가들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대번에 경주와 광주의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여긴 서울 같잖아..! (저희가 밤에 도착하여 더 그랬겠지요.)
다시 전남도청 찾아간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1980년 총탄의 흔적을 보러 전남도청에 갔더니, 문화의 전당인가 뭔가를 만드느라 엄청나게 땅을 파고 공사 중인데, 전남도청 건물까지 모두 공사용 쉴드를 쳐놓아 못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아예 건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총탄의 흔적은 커녕, 전남도청 건물의 한 층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 사실도, "이 가림판 뒤가 전남도청입니다만, 문화전당(?) 건립을 위해 부득이 가려놓았습니다. 불편을 부디 용서하시고, 반드시 더 좋은 시설로 찾아뵙기를 약속드립니다." 라는 식의 안내문이 있어서 알게 된 게 아닙니다.
길 가는 행인을 귀찮게하여 겨우 알아낸 것이, 바로 등 뒤에 있는 낡은 흰 건물이 전남도청 건물이며, 지금 공사로 저리 해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헐... 자세히 알려주신 그 남자 분이 아니었다면(그나마 친절했던 분!) 그 전 10여 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계속 그 건물 주변을 맴돌며 어디가 도청인가 찾아 헤매었을 겁니다. 허허..
그 사실을 알고나니, '구 도청'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안하무인적 시선으로 꾸짖듯 여기서 내리라 했던 송정리역의 어린 역무원이 더 괘씸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무원 제복 비슷한 것을 입고 있었으니 세금으로 사는 사람일 텐데, 관광객이라 말한 제게 '그곳이 현재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으니 학생운동 기념관을 가보시면 어떻겠느냐'고는 못할 망정, 이렇게 헛걸음을 하게 하다니 괘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추워지고 해가 뉘엿거려서 멀리 갈 수는 없는 형편이고, 근처가 충장로로 명동과 동대문을 합해 놓은 것 같은 곳이라 그곳을 걷다가 너무 추워서 아디다스에서 기모 긴팔 티셔츠 한 장을 샀습니다. 국립묘지에 가보고 싶은데, 제법 먼데다 그 쪽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서 못 가고 말았습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날씨나 시간..여러가지 상황상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충장로에서 나와 또 다른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치킨을 시켜먹었습니다.
떡갈비를 제외하고 광주에서 인상적인 것은 유흥주점입니다. 정말로... 많습니다. 저희가 그런 곳이 많은 지역만 다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많습니다. 숫자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딜 가나없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머무는 이곳 상무 쪽은 정말 유흥주점이 많고 모텔도 많습니다. (이해가 안될 정도로 많습니다.)
민주화로 가장 많은 피를 흘렸을지 모르는 곳에 지천에 널린 것이 유흥주점이라니 씁쓸합니다. 가볍게 한 잔 할 만한 바(Bar)는 전혀 보지 못했고, 순수한 노래방도 볼 수 없었습니다. PC방은 유흥주점 100개에 하나 꼴쯤 될까 말까. 편의점은 모텔 건물 30개 있는 곳에 한 2~3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송정리역의 불친절한 직원과 경주 관광안내소의 두 여직원의 태도 차이는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경주의 마지막 식사로 조그만 김밥나라에서 돈가스와 짬뽕라면을 먹었는데, 너무나도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정수기 위에 놓여있던 보라색 법요집이 생각나니, 광주와 확연히 비교됩니다.
물론 광주에도 좋은 점이 많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칠레산 홍어와 무례한 역무원, 2014년에나 완공되니 그 전엔 아마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전남도청 건물, 너무나 멀고 가기 힘든 5.18 국립묘지, 지천에 널린 유흥주점과 상무역 주변의 모텔촌...
내일은 담양이나 목포로 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하루 이틀 보낸 후에 해남으로 갈까 합니다.
여행의 삼분의 이가 지났습니다. 거대한 감동보다 작은 재미와 행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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