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석해균의 기억력 (2011년 3월 1일)

divicom 2011. 3. 1. 13:35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 풀려난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던 그가 마침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보도진을 만났다고 합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오던 그는 25일부터 호흡기의 도움없이 호흡을 하게 되었고 미음도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제 오후 수원의 아주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간간이 미소를 지으며 '못 생겼어도 잘 찍어달라'고 농담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는 배가 완전히 해적들의 수중에 들어갈 때까지는 선장을 해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 '죽이겠다'는 협박을 들으면서도 선원들에게 '배를 고장내라'고 적은 종이를 건넸다고 합니다. 해적들도 죽인다고 협박은 하면서도 별로 때리진 않았고 배를 일부러 고장낸 게 발각됐을 때도 젊은 해적 두 명이 주먹으로 등을 친 게 전부라고 합니다.

석 선장은 아덴만 작전 당시 어두워서 해적 중 누가 자신에게 총을 쏘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매트리스를 뒤집어쓰고 엎드려 있는데 바닥을 스치면서 (총탄이) 튀어 올랐다... 총격이 오갈 때 '여기서 눈감으면 죽는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정신을 잃지 말자'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병원측은 석 선장의 폐기능은 물론, 봉합한 복부 3곳도 회복 중이고, 총상으로 인한 골절 부위도 점차 나아지고 있어 주말쯤엔 일반병실로 옮겨 추가 정형외과 수술 등을 받게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해적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그를 만나 조사할 거라고 하는데, 부디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너무 괴롭히진 말았으면 합니다. 해적 사건이 거론될 때마다 얘기했지만 해적 중 누가 석 선장에게 총을 쏘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우리 청해부대의 탄환이 누구 것인지 밝힐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한때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기억력이 지식을 자랑하는 데 쓰이거나 입장을 부각 또는 변호하는 데 쓰이는 일이 많아서입니다. 게다가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을 저장하는 행위라 기억이 많은 사람의 창의적 능력은 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한 사람이 있고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잊히지만 꼭 기억해야 할 사람과 일은 많지 않습니다. 석 선장에게 총을 쏜 해적의 얼굴은 기억할 필요가 없지만 오늘 삼일절이 무슨 날인지는 꼭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십대들 중에는 삼일절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정부가 국사를 홀대한 결과가 나타나는 거지요. 인터넷에는 삼일절이 무슨 날인지 알아오라는 숙제를 도와달라고 하는 초등학생들이 많습니다. 이제라도 다시 국사를 필수적으로 교육하여 자라나는 국민이 제 나라의 역사를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지난 달 메가스터디라는 교육업체가 전국 고등학생 회원 3만 19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걸 찬성하는 응답자가 45.3퍼센트로 반대(43.3퍼센트)보다 조금 많았다고 합니다. 학년 별로는 고3의 찬성이 1, 2 학년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젊을 때는 무엇이 사소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소위 성인들의 몫입니다. 이 나라 정부와 기성세대가 상식을 회복하여 상식적 교육을 펼치기를, 그리하여 젊은 국민들로 하여금 꼭 기억할 것을 기억하게 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