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 맞으며 친구집에 (2011년 1월 10

divicom 2011. 1. 10. 14:20

서울 중학동 옛 한국일보 건너편에 출판문화회관이 있고 그 지하에 서울셀렉션(Seoul Selection)이라는 북카페가 있습니다. 서울셀렉션은 한국의 문화컨텐츠를 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회사로 본사 사무실은 몇 블록 떨어진 화동에 있지만, 북카페를 통해 외국 고객과 한국인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의 커피는 여느 유명 커피숍 못지않게 맛있고 남해의 유기농 유자로 만든 유자차도 아주 일품입니다.

 

시내에 나가면 가끔 그곳에 가서 커피를 마십니다. 갈 때마다 외국어로 쓰인 우리 컨텐츠의 양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지 놀라게 되고, 한국을 알고 싶어 그곳에 들른 외국인들을 만나 한두 마디 주고 받기도 합니다. 미아자키 야스유키씨도 거기서 만났습니다. 부인과 함께 그곳에서 영어로 번역된 한국 전통 시조집을 찾던 그가 저를 주인으로 알고 말을 걸었습니다. 마침 그곳엔 그가 찾는 책이 없었지만 제게는 있었습니다. 그에게 사정을 말하고 원하면 한 권 보내주겠다 했더니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일본으로 돌아갔고 저는 품절된 지 오래인 그 책을 수소문해 새 책 같은 헌 책 한 권을 구했습니다. 그것을 그가 사는 이바라키현의 쓰쿠바시로 보내주었더니 그는 감사의 뜻으로 일본 전통 종이 공예품인 컵받침과 시세이도 샴푸와 린스를 보내주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제가 그에게 CD 한 장을 보냈습니다. 이번엔 과자 한 상자가 답례로 왔습니다. 정초부터 감기로 고생하며 미야자키씨가 보내준 과자를 먹었습니다. 창밖 지붕 위에 내린 눈을 바라보며 과자를 먹으면 어디 일본 북부의 소도시 여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개 책은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지만 그것이 하는 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아리를 기울이니 달이 쏟아지네(Tilting the Jar, Spilling the Moon>라는 제목의 작은 책은 겨우 196쪽, 그러나 그 책은 12~13세기의 문인 이규보와 저를 잇고, 저와 미야자키씨를 잇고, 또 미야자키씨와 누구를 이을 겁니다. 미야자키씨는 이 시집의 후반에 실린 현대시보다 전반에 있는 이규보와 정철, 윤선도 등의 시조가 더 좋다고 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시조 중에 이규보의 시조 '눈 맞으며 친구 집에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도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엔 원문은 없이 영어 번역문만 실려 있습니다.

 

Visited a friend in the snow but did not meet him

 

The snow shines whiter than paper;

I take my whip and write my name and cha(자: 어릴 적 이름)

Don't let the wind sweep the spot;

kindly wait for the master to come. 

 

작가는 말 채찍을 꺼내어 종이보다 하얗게 빛나는 눈 위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는 친구가 올 때까지, 바람이 불어 글씨가

지워지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혹 눈 내리는 날 어디론가 가고 싶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는 곳으로 가보십시오. 그곳에 가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