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젊은이의 자살 (2011년 1월 17일)

divicom 2011. 1. 17. 12:24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카이스트에 입학해 '로봇영재'로 불리던 조모 군의 자살 소식을 들으니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과 미국에 사는 친구 생각이 납니다.

 

MIT 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윌 헌팅(맷 데이먼)은 정규교육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젊은이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청소하다가 교수가 벽에 써놓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쉽게 풀어버리는데, 그것을 안 램보 교수가 윌에게 접근하지만 그는 무관심합니다.

 

보호관찰 대상이던 윌이 폭행을 저질러 수감되자 램보 교수는 보증인을 자처하여 그를 석방시킨 후 그를 심리학 교수인 숀(로빈 윌리엄스)에게 소개합니다. 처음에 냉소적 태도로 일관하던 윌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숀 덕에 마침내 마음을 열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납니다.

 

대전 둔산경찰서에 따르면 조군은 8일 밤 11시 30분 께 대전 카이스트 내 보일러실 주변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으며 바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고 합니다. 그는 저녁 9시 30분쯤 친구에게 '약을 먹고 죽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경찰은 조군이 카이스트에 입학한 후 일부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는 등 부진한 성적으로 고민해온데다 최근 여자친구와도 헤어져 자살을 결심했을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부산에 있는 공업고등학교 디지털 정보전자과 출신인 조군은 카이스트 입학사정관 전형에 합격해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로봇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시 정보영재원에 선발되었으며, 중학교 때는 로봇올림피아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며 2006년에는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세계대회에서 3위, 2007년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한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해 '로봇영재'로 불렸다고 합니다.

 

조군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나자 입학사정관 전형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입학사정관 전형이 아니고 그 전형을 통과해 뽑힌 학생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 미국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카이스트의 교수로 초빙되어 온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산 지 오래된 그 친구는 조국의 영재들을 모아 교육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었으나 한 학기만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성실하기만 하고 창의적이지는 않은' 학생들과의 생활이 너무나 재미가 없어 견딜 수 없다는 게 그 친구의 얘기였습니다.

 

조군이 카이스트에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건 그가 '성실할 뿐만 아니라 창의적'이어서 '성실하기만 하고 창의적이지는 않은' 학생들 위주의 교육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죽음을 결심하게 될 때까지 그가 느꼈을 외로움, 소위 전문계 고등학교 출신으로서 그가 감당하려 애썼을 책임감의 무게가 어떠했을지...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조군이 돌아가고 며칠 후 카이스트 바이오및 뇌공학과 부교수 정재승 씨가 트위터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글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 1학년 학생이 공부가 즐겁지 않아 자살을 선택했어요. 올바로 지도해야 할 교수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했듯이, 교육과 평가도 학생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했어야 했는데... 학생들에게 많이 미안하네요...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부과하는 현 카이스트 시스템은 창의적인 괴짜 학생을 배출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지요. 이제 카이스트가 창의적인 대학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학생들을 정량평가와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가 되었어요..."

 

혹시 지금 조군과 비슷한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그만두라고. 교수가 뭐라하든 부모가 뭐라하든 듣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SKY나 카이스트에 다니지 않아도, 남들에게 칭찬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살아있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절대로 죽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