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하나님 뜻대로 (2010년 12월 25일)

divicom 2010. 12. 25. 08:58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근로자를 위하여 애쓰는 태일이의 뜻이 이 모양으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참새 한 마리도 당신의 뜻이 아니고는 떨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가엾은 목숨도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품 속에 품고 온 성경책을 아들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그러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전태일은 말했다. '어머니 담대하세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그래야 내가 말을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아들은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은 목숨들, 불쌍한 근로자들을 위해 죽어가는 나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걱정마세요. 조금도 슬퍼 마세요.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해보시면 어머니도 이 불효자식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를 원망하십니까?'

 

어머니는 웬일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흉하게 탄 아들의 얼굴에서 눈도 돌리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 어찌 원망하겠니? 원망하지 않는다.' 아들은 빙그레 웃었다. '역시... 우리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 한마디를 하고는 손을 내밀려는 듯 몸을 움칫하다가 되려 잠잠해지며,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하였다.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달라는 아들의 이 한마디는 어머니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 박혔다. 입술을 깨물어 그 말을 되새기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약속을 했다.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께.'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에서 인용.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운 성탄 축하 인파를 보며 예수를 생각합니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근로자들의 인권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산화한 '노동자 예수' 전태일을 생각합니다. 그의 나이 푸르디 푸른 스물 둘. 그 날부터 40년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이제 여든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그의 삶을 이루던 '믿음, 소망, 사랑'은 개인적 복락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전락한 듯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는 대신 만인을 위해 죽은 그의 사랑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루겠다고 마음 먹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교회들의 문이  활짝 열리어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집 노릇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