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간아, 인간아 (2010년 10월 22일)

divicom 2010. 10. 22. 11:03

큰 나무들 사이에 숨은 작은 샘처럼 조용히 살아도 때로는 나갈 일이 생깁니다. 아직 사회적 동물이니 말입니다. 지난 주초부터 나갈 일이 생기더니 주말조차 쉬지 못했습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마침내 고열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머리는 벽돌처럼 무겁고 양뺨이 따끈따끈합니다. 팔 다리 속에선 아주 작은 이들이 창을 들고 싸움판을 벌입니다. 내가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던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인간아, 아 어리석은 인간아!' 뒤늦게 탄식을 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바로 옆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 옵니다. <100년 동안 인간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짓들>. 이 책은 몇몇 저명인사들의 에세이가 곁들여진 사진집입니다. 

 

바다에 유출된 기름, 방치된 핵 폐기물, 남벌로 황폐해진 삼림, 하늘을 덮는 화력발전소의 검은 연기, 생체실험에 이용된 포로들, 시험대 위의 실험동물들. 상가를 장식하는 모피코트들,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들, 전쟁터와 탱크들...

 

'지난 100년 동안 변화된 것들'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1996년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 4천6백30종의 포유류 중 25%와 9천6백75종에 달하는 조류의 11%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또한 20세기 후반부터 매년 1천5백만 헥타르 이상의 열대림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 열대림에만 육상 생물의 50~90%가 살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생물들도 급속한 멸종 위기를 맞고 있음에 틀림없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류학자이며 사상가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evi-Strauss)의 에세이에는 이런 구절이 보입니다. "지난 3백여 년 동안 인간이 여느 생명체들과 다르다며 스스로 정해놓은 '인권'의 정의를 새롭게 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릇된 권리의식은 인간을 고립시킨다.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권리에 따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이 외면당하고 있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희생 당한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 앟고 다만 인간의 권리만이 다른 생명을 침해하는 형태로 점차 확대되어온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도덕적인 존재라고 정의하고, 일반 생명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생명체의 고유함과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이익 혹은 재미를 위해 다른 생명체를 희생하는 것을 괘념치 않습니다. 다른 인간에게 상처를 주면서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일도 허다합니다. 제가 제 몸에 고열을 불러들인 것이나 지구가 이렇게 망가져가는 것이나,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이 초래한 것임을 생각하며 지구 멸망에 대한 얘기를 상기하니 묘한 쾌감이 느껴집니다. 지구가, 자연이 아무리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복수한다 해도 불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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