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방송(SBS)의 수목 드라마 '대물'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박인권 화백의 동명 원작만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아나운서 출신으로 첫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서혜림(고현정 연기)과 제비 생활을 청산하고 검사가 된 하도야(권상우 연기)의 투쟁과 활약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서혜림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엮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 생각에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하도야라는 검사 때문입니다.
정치인들, 특히 집권여당의 손에 놀아나는 검찰 조직 안에서 유일하게 바른 말을 하다 좌천을 당하고 그러면서도 패기를 잃지 않는 검사의 태도가 시청자의 박수를 불러 일으키는 거지요. 검사가 검사답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데 하도야 검사가 이렇게 박수를 받는 것은 국민에 대한 당연한 의무조차 하지 않는 검사들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어젯밤 문화방송(MBC)은 9시 뉴스를 통해 바로 그런 왜곡된 검찰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08년 12월 조두순이라는 50대 남자에게 가혹하게 성폭행을 당해 여덟 시간 동안 수술을 받고도 회복불가능한 몸을 갖게 된 여덟살 소녀 나영(가명)에게 검찰이 조사를 한답시고 무슨 짓을 했는지 보도한 것입니다.
"몹시 추웠던 지난해 1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는 검찰청사로 불려갔습니다. 수술자리가 아물지도 않았고 장 통증으로 사흘째 금식 중이었지만, 검찰은 출장 조사를 하지 않고 청사로 부른 겁니다. 검찰 조사 당시의 사진입니다. 딱딱한 철제 의자에 앉은 나영이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반쯤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배변 주머니를 차고 있는데다, 아직 수술한 부위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영이 아버지는) 조사 시간도 영상녹화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4차례나 진술을 반복해 1시간40분이나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소송을 진행한 검찰 태도입니다. 항소심에서 조두순의 경찰조사 장면을 촬영한 CD를 제 때 내지 않아 나영이는 법정에 불려가 조두순 앞에서 다시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나영이의 진술 조사는 두 번 뿐이었다고 반박하고, 조사했던 검사도 징계를 받은 뒤 사직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나영이는 똑바로 앉기도 어려운 상태였는데 검사는 철제 의자에 직각으로 앉으라고 했으며, 배변 주머니를 1시간마다 교체해야 했는데 조사가 길어져 2시간 반 이상 교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영이와 어머니는 검찰이 영상자료를 뒤늦게 제출해 아이에게 불필요한 법정 증언을 하게 하고, 형사기록 열람 및 등사 신청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부는 한 번 더 양측의 변론을 들은 후 선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판을 거듭하고, '대물'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모두 이 나라에서 실종되다시피한 '정의'를 그리워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과 '대물' 같은 드라마가 현실의 반증이 되는 대신 지적인 유희나 유머를 제공하는 데 그치는, 그런 때가 언제나 올지, 오긴 올지, 답답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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