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당근이지! (2026년 4월 14일)

divicom 2026. 4. 14. 12:19

시장에서 검은 흙으로 뒤덮인 당근을 삽니다.

제주도에서 온 당근이라고 합니다. 주황빛  어여쁜 당근보다

흙투성이 당근을 사는 건 현무암이 풍화된 화산재 흙을 만지며

직접 겪은 적 없는 화산 활동을 상상하고 싶어서입니다.

 

굵고 가는 당근들 중엔 머리 부분에 눈곱만한 연두 싹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싹이 자란 머리 부분을 잘라 빈 화분 두 개에

나눠 심습니다.

 

올 초에도 흙 당근의 머리를 잘라 심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당근 이민 1세대인데, 이젠 제법 자라 작지만 선명한 초록 잎을

뽐내고 있습니다. 당근의 어린 잎엔 염증을 없애 주는 온갖 영양소가

풍부하다지만 따 먹기보다 잎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민 2세대 당근 싹들이 담긴 두 개의 화분 앞에 앉으니 한창 보라와

흰 꽃을 자랑하는 재스민이 절 향기로 저를 부릅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재스민에게 갑니다. '알아, 재스민, 네가 얼마나 애써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웠는지. 네 덕에 온 집안이 향기로운 절간 같아,

고마워!' 재스민의 웃는 얼굴을 보고 다시 당근에게로 돌아갑니다.

 

'당근아, 낯설다고, 보여 줄 것 없다고, 뿜어낼 향기가 없다고 기

죽지 마.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이 있잖아! 게다가 여긴 미국이

아니니 ICE(이민세관단속국)도 없어. 여긴 땅 속에서 자라는 이든

땅 위로 높이 솟는 이든 모두 친구로 어울려 사는 곳이야." 토닥이고

일어서려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당근이지! 내겐 한라산의 DNA가 있어서 난 누구보다 잘 알아. 조바심이

가장 큰 적이라는 걸. 조바심치지만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