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숨어 계시는 예수님을 외면한 채, 그분이 누우실 구유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수십 번 성탄절을 맞이했지만 내 생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탄절은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 아프리카에서 맞은 성탄절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성탄절을 기억하며 가난한 곳 어딘가에서 계속 태어나고 계실 예수님을 우리가 몰라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이슬람 지역에서 그 사람들을 개종시킬 수 없다고 해서 우리의 선교 기능이 정말 마비된 것일까? 그건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지금 북 수단에 계신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들을 개종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안아 주며 위로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나 수치, 틀에 박히지 않는 예수님의 깊고 넓은 사랑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교가 아닐까."
"우리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의 행동이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진정한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고르놈'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이런 '마음의 신분증'은 먼 훗날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입장권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 아프리카 수단에서 가톨릭 사제로, 의사로, 교육자로, 친구로 헌신하다 2010년 1월 14일 마흔 여덟 살을 일기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인용. 마지막 문단의 '고르놈'은 수단 톤즈에 사는 딩카족의 부족 표시: 잘 드는 칼로 이마 양쪽에 내는 네 줄에서 열 줄의 긴 상처.
어제 상암CGV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생애를 담은 '울지마 톤즈'를 보았습니다.
여러 극장에서 상영 중이니 모두 한 번씩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손님이 적어서 곧 종영될 것 같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준 한국방송(KBS)과 구수환 감독에게 감사합니다.
이 영화를 제게 알려주신 '나그네 알바트로스'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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