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날 아침 부고를 받았습니다.
뜬금없이... '새로 태어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울지마 톤즈'를
방영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 영화를
보던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개인의 안락을 목표로 하는 대신
더 높은 뜻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 노력할 때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 그의 선의와 선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결한 이름... 그분 덕에 말갛게 씻긴 눈을 닦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얀 눈은 사라지고 거뭇거뭇한 눈만 가로수 아래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눈은 흰눈일 때 눈 대접을 받고 사람은 의식이 제대로
작동해야 사람 대접을 받으니, 어르신이 어제
떠나신 것은 불행 중 다행일까요...
망자가 자손 많은 고령일 때 으레 그렇듯
상주 명단이 길고 문상객도 많았습니다.
북적이는 방의 일원이 되니 상주 이름 하나에
문상객 적은 옆방에 괜히 미안했습니다.
막 아버지를 여읜 며느리를 영안실에 보내놓고
혼자 계실 어머니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크리스마스는 축일이었습니다.
가족 누구도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케이크를 사다
초를 밝히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멀지 않았기에 케이크 대신
피자 한 판을 사들고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어제 떠나신 사돈어른보다 한 살 어리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며 목메는 날이 자꾸 늘어납니다.
피자 한 조각을 맛있게 드신 어머니 볼에 입을 맞추고
사진 속 아버지께 인사 여쭙고 돌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은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축원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부디 잘 사시라...
그대와의 사별이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말갛게 씻어주도록...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달력을 걸고 (2023년 1월 3일) (0) | 2023.01.03 |
---|---|
새해 소망 (2022년 12월 31일) (4) | 2022.12.31 |
사랑받는 자들은 (2022년 12월 11일) (4) | 2022.12.11 |
노년일기 145: 그녀의 비늘 (2022년 12월 4일) (1) | 2022.12.04 |
12월 (2022년 11월 30일) (1) | 2022.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