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제게 보약을 지어주시던 선생님은 '나쁜 점은 하루라도 젊을 때 빨리
고쳐야 한다. 나이들면 점점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꼭 나쁜 점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기질은 나이들며 점차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흔 넘은 어머니와 일흔이 가까워지는 딸의 만남이 자꾸 삐그덕거리는 것도
바로 그래서이겠지요.
하루라도 집에 머물면 병이 나신다는 어머니와 달리 저는 가능한 한 집안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거나 많은 물건이 있는 곳을 매우
싫어하는데 어머니는 사교와 백화점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부르시면
싫다는 말을 못하고 백화점에 동행하곤 했습니다. 다녀와서 앓는 것은 저와 함께
사는 가족들만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외출을 좋아하시고 그 외출에 저를 부르는 걸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전보다 더 외출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나이들며 줄어드는
에너지 탓이 큽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밖에서 뵙지만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으시는지 문득 밥 먹자고 전화를 하십니다. 저는 외출도 외식도 좋아하지
않으니 나가면서도 즐겁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보청기를 끼시고도 잘 듣지 못하시지만 식당이나 카페에서 큰소리로
얘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에도 이 블로그에 쓴 적이 있지만 제 딴에는
크게 얘기해도 어머니는 늘 서운해하십니다.
어머니의 눈에 거슬리는 건 제 '작은 목소리'만이 아닙니다.
어머니보다 조금 먹는 것도 거슬리고 어머니처럼 멋내지 않는 것도 거슬립니다.
얼마 전 어머니와 같은 양을 먹었다가 탈이 나서 고생한 후로는 어머니가 뭐라고
하셔도 저 먹을 만큼만 먹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싶어 '노오력'했지만 아무래도 효녀가 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효녀의 꿈은 포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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