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22: 옛 친구 (2022년 6월 2일)

divicom 2022. 6. 2. 08:12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오래된 친구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엔 열심히 자신을 탐구하고 이웃에 도움되는 삶을 지향해

영감을 주던 친구가 나이들며 일신의 안락만을 좇아 실망을 주기도 하고,

'이 나이에 무슨 책을 읽느냐'며 무지를 자랑하거나 '이제 칠십이 코앞이니

내 맘대로 편하게 살겠다'며 안하무인적으로 행동해 부끄럽게 만드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래 못 본 친구를 만날 때는 작은 선물과 함께

실망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엊그제 삼십 여 년 전 한 직장에서 근무했던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그랬습니다. 그동안 몇 년에 한 번씩 만났던 터라 그 친구의 변함없는

맑음을 알고 있었지만, 노년에 가까워지며 갑작스런 변화를 보인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친구가 예약해둔 인사동 한정식 집은 예전에 선후배들과 자주 가던 집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가 본 인사동은 현란한 이방(異邦)과 낡은 고향이 공존하는

묘한 곳이었습니다.

 

테이블 하나가 들어가는 문간방에 마주 앉아 말과 음식을 나누며

진실로 즐거웠습니다. 한 직장의 선후배로 지낼 때도 그의 맑음이 좋아

짐짓 시비를 걸곤 했는데, 유명한 회사의 높은 사람이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맑았습니다.

 

게다가 그가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해주니 그의 말 대로 내가 제법 쓸모 있는

사람인가 하는 행복한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와 한밤의 거리를 거닐다 마지막 지하철 열차에서 강제 하차까지 당했지만

그날의 추억은 오래 저를 지켜줄 겁니다. 언젠가 다음에 다시 만날 때

그가 실망하지 않게 열심히 절차탁마해야겠습니다. 고마워요, 옛 친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