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잠시 눈을 씻고
제가 아는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이름들을 떠올리다 보면 돌부리가 발을 붙잡듯 저를 붙잡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럴 땐 한참 그 이름에 머뭅니다.
그리곤 둘째 수양딸이 보내준 공진단 한 알을 먹습니다.
금빛 환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면 누군가의 약손이
몸과 마음을 두루 어루만져주는 것 같습니다. 둘째 아기 출산을
준비하느라 바쁜 중에 제 건강을 걱정해 보내준 약입니다.
혈색 좋은 얼굴로 아기를 보러 가고 싶습니다.
밥은 무안의 최 선생님이 보내주신 우렁이쌀로 지은 것입니다.
고소한 귀한 쌀밥을 먹다보면 '밥이 보약'이라는 옛말이
참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친구가 가져다준 참기름은 아깝지만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가 좋아할 테니까요.
밥을 먹은 후엔 햇살을 맞으며 '응급실' 카페로 갑니다.
첫째 수양딸이 선결제해준 덕에 마음놓고 커피를 마시며
카페의 책들을 뒤적입니다. 카페 앞 작은 마당의 수국은 자꾸 꽃을 피워
매일 새 얼굴입니다.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우리집 수국이 안쓰럽지만
꽃이 피든 피지 않든 수국은 수국입니다.
'괜찮아 수국, 네 존재만으로도 충분해!'
오늘은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에 갑니다.
주머니가 비었을 땐 미용실에도 큰맘을 먹어야 갈 수 있지만
참기름 친구가 주고간 용돈이 있습니다.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가니 수레국화가 환히 웃어줍니다.
엊그제 한 송이 수레국화 얘기를 이 블로그에 썼더니
친구가 수레국화 화분 하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 저는 무능하고 무지하고 편협하지만 저의 잔은 늘 이렇게 넘칩니다.
큰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 아직도 요 모양 요 꼴이니까요.
힘겹게 번 돈, 힘들여 키운 쌀과 꽃을 제게 가져다 주는 친구들은
제가 우리집 수국에게 하듯 괜찮다고 해줄지 모르지만
다시 옷깃을 여밉니다. 살아 있는 동안엔 하는 데까지 해봐야 합니다.
가능한 한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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