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변을 잉크빛으로 물들인 수레국화들을 보면
아주 작은 몸이 되어 그 사이에 들어가 서고 싶습니다.
수레국화들 사이에서 시치미 떼고 그들과 함께
바람을 그리고 싶습니다.
함께 걷던 친구가 풀밭에 떨어진 수레국화 한 송이를
집어 줍니다. "보셨지요? 꺾은 게 아니고 떨어진 걸
주운 거예요." 결벽증도 때로는 사랑스럽습니다.
가장 작은 병도 수레국화 한 송이에겐 너무 큰집.
하얀 휴지 한 장을 접어 넣고 물을 담습니다.
휴지를 딛고 선 수레국화가 제법 꼿꼿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어찌 그리 아름다우신가'
탄식합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저 선명한
잉크 꽃잎이 마냥 지속될 것만 같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느 날 문득 꽃잎의 끝이
하얗게 바래기 시작합니다. 하양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
모든 꽃잎을 물들이고 어떤 꽃잎들은 말라 오그라집니다.
이젠 수레국화가 아니고 한때 수레국화였던 어떤 것입니다.
제가 수레국화인 걸 깨달은 건 꽃잎 끝이 하얗게 바래는 걸
보았을 때입니다. 그와 제가 바래는 방식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한 적 없이 바래기만 하는 게 부끄럽지만
이미 바램의 과정에 들어섰으니 하는 수 없습니다.
최선의 달성이 목표가 되는 시절이 있는가 하면
최악을 피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시절도 있습니다.
지금 제 목표는 가능한 한 덜 추하게 바래가는 것입니다.
수레국화 선생을 제 앞에 모셔다 준 친구와
함께 바람을 그렸던 친구들... 그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가능한 한 덜 추하게 바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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