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희 집엔 꽃과 나무가 많았습니다.
장미나 활련화처럼 화려한 꽃이 있는가 하면
무화과처럼 조용한 나무도 있고
딸기 꽃처럼 음전하고 예쁜 꽃도 있었습니다.
딸기가 붉어지기를 기다리던 중 집에 놀러온 친구가
덜 익은 딸기를 따먹어 버려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겨울 과일이 된 딸기가 그땐 여름 초입에야
제 맛이 들었습니다.
올 초엔 딸기 한 상자가 2만 원 가까운 값에 팔렸습니다.
봄 과채인 딸기를 겨울에 먹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공적 노력을 기울였기에 저 값에 파는 걸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면, 턱없이 비쌀 땐
사지 않는 게 제 원칙입니다. 대파를 좋아하지만 한 단에
8천 원, 만원씩 할 땐 사 먹지 않았습니다. 딸기 한 상자에
2만 원을 호가할 때도 꽃 같은 얼굴만 보았습니다.
그러다 오늘 낮 산책길에 한 상자에 4천 원 하는 딸기를
만났습니다. 한 입에 한 알 넣으면 꼭 맞을 크기인데
꽃처럼 어여쁜 몸에 별 닮은 씨가 촘촘했습니다.
아담한 몸집에 총총한 별이 꼭 어릴 적 뒤뜰의
딸기 같았습니다.
하나... 둘... 딸기 별이 입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딸기를 얼마 동안 먹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며칠 동안엔 나쁜 말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딸기 별의 우주!
딸기처럼 부드럽고 고운 말만 내어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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