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46: 사이좋은 부부 (2020년 8월 11일)

divicom 2020. 8. 11. 11:31

구순의 어머니와 점심을 먹는 건 주례행사입니다.

너무 덥거나 폭우가 내려 한 주쯤 거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 전부터

‘집콕’을 좋아하는 저와 달리 어머니는 ‘매일 나가야 하는’

분이니까요.

 

요즘 어머니와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사이좋은 부부를

여럿 보았습니다. 대개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듯한

아이들을 대동한 40대 부부였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삼계탕 집에서 본 부부에겐

아들이 둘이었습니다. 몇 인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계탕과 전기구이통닭으로 상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옆에는 빈 맥주병 세 개가 있는데

제가 도착한 후 바로 한 병을 더 주문했습니다.

큰아이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느라 바쁘고

작은 아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자꾸 소리를 질렀지만

아버지는 맥주를 마시고 어머니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다음 주엔 중국음식점에 갔는데 그날도 폭우가 퍼부었습니다.

비가 이렇게 오니 손님이 별로 없겠지 했는데 오산이었습니다.

아래 위층 할 것 없이 손님들로 넘쳐났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폭우도 사람들의 욕망을 막지 못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욕망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든...

 

자리가 없어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사십 대 남자가 식당 주인에게

아기 기저귀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인이 없다고 답하자

남자는 왜 기저귀가 없는가 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습니다.

기저귀를 차는 아기와 외출하면서 여분의 기저귀를 안 가져왔단 말인가

의아했지만, 기저귀를 한 개 가져왔는데 그마저 써 버렸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자리가 비었다며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방으로 갔습니다. 제법 큰 방에 테이블 두 개가 있는데

저쪽 테이블엔 아까 기저귀를 찾던 남자와 그 가족이 있었습니다.

음식은 다 먹은 듯했지만 뭘 하는지 부부 모두 일어났다 앉았다

부산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즐겁게 뛰어다니고 둘째인 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고

어머니는 딸에게 ‘그러면 안 되지요?’ 우아하게 반복했습니다.

 

기저귀 일가가 떠나고 흐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찰나

또 네 명 한 식구가 들어와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 집은 아들만 둘이었습니다.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두 어린아이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니 조금 전 가족보다

훨씬 조용했습니다. 부부는 사이좋게 맥주를 고르고

음식을 골고루 주문하더니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에 열중했습니다.

요리와 음식이 나왔지만 네 식구 모두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저런, 음식이 다 식겠네,’

저 혼자 마음을 졸였습니다.

 

한참 전화기를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자, 이제 그만하고 먹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들었지만 아이들은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채근했고 드디어 네 식구의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머, 이 짬뽕 국물이 왜 이래?

다 식었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테이블에 붙은 직원 호출 단추를

누르니 직원이 금세 왔습니다. ‘이 국물이 다 식었네요.

뜨거운 걸로 바꿔 주세요.’ 어머니가 당당한 어조로 말하자

직원이 ‘네’ 하고 짬뽕 그릇을 들고 나갔습니다.

 

제겐 모든 게 신기했습니다. 밥상에서 전화기에 열중하는 것도

신기하고, 식당에서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시종일관

‘그러면 안 되지요?’ 하는 것도 신기하고, 음식이 나왔는데도

가족 모두 전화기를 보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자기가 안 먹어서

식은 음식이 애초에 식은 채 나온 것처럼 당당하게 바꿔달라고

하는 것도 신기하고, 이 모든 상황에서도 사이좋은 부부가 신기하고...

 

아무래도 저는 이 나라에 막 도착한 이방인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