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천박한 도시(2020년 7월 27일)

divicom 2020. 7. 27. 12:12

누구의 말이냐에 상관없이 옳은 말은 옳은 말, 틀린 말은 틀린 말입니다.

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모르지만 그가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표현한 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은 '천박한 욕망으로 가득한 천박한 도시' 가 맞습니다.

천박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천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감을 느끼는 도시...

 

[여적]‘천박한 도시’

조운찬 논설위원

 

1990년대 초 한국을 처음 방문한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 한강에 늘어선 아파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울에 왜 이리 아파트가 많으냐’고 물었을 때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죠.” 그는 다시 놀랐다.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에는 한국과 같은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레조는 귀국한 뒤 ‘어떻게 한국은 아파트가 유행인 나라가 됐을까’를 파고들었다. 연구는 박사논문으로 쓰여졌고, 단행본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으로 출간됐다.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서울의 아파트를 ‘개인의 욕망과 정부의 주택정책, 건설업체의 이윤 추구가 빚은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그의 진단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한국의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다. ‘어느 지역, 어떤 아파트에 사는가’가 그 사람의 지위를 말한다. 재벌 건설사들은 대단지 아파트에 자사의 이름과 브랜드를 내걸었다. 단지 내 가구에는 재벌 기업이 생산한 가전제품들로 채워졌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200만호 건설계획으로 시작된 아파트 공급확대는 3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분당·일산에서 시작된 신도시 정책은 3기까지 이어지면서 수도권 신도시는 20개에 달한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삶의 척도이다. 고가 아파트 앞에선 명예도 권위도 빛이 바랜다. 일부 공무원들은 강남의 ‘똘똘한 한 채’를 지키기 위해 고관대작의 자리도 내던진다. 대단지 재건축·재개발은 도시경관을 바꿔놓았다. 서울 시내에서 인왕, 북악, 낙산, 남산의 내사산(內四山)을 조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고도 한강변을 따라 아파트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돈과 편리함, 새로움 등 자본의 욕망만 좇은 나머지 600년 역사도시 서울의 정체성과 미학은 점점 퇴색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해서 시끄럽다. 이 대표는 “한강을 배 타고 지나가다 보면 아파트 설명밖에 없다”며 “세종시는 이런 천박한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한창인 속에서 나온 이 대표의 발언이 시기·장소 면에서 부적절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아파트 공화국>의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62024005&code=990201#csidxabb0c1776d4dec4aaf18d2afc8c07a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