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경향신문에서 본 어떤 기사 덕에 불쾌한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기안84 웹툰, 또 여성혐오 논란 “연재 중단하라”
청와대 청원도‘였고, 10면 오른쪽 아래에 실려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면, 기안84가 네이버웹툰에 연재하는 ‘복학왕’이라는
웹툰의 ‘광어인간’ 편에 여주인공 봉지은이 인턴으로 근무하던
대기업에서 자신을 구박하던 남성 상사를 사귄 덕에
정직원이 된 것으로 나오는데,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웹툰의 연재 중지를 요구하는 글이 게재돼 하루만에
6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고 합니다. 청원인은 이 웹툰이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여성을 희화화”했으니
‘웹툰 연재 중지를 요구합니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기안84는 웹툰의 내용 일부를 수정하고 사과했으나 비판 여론은
계속 커졌고, 기안84가 출연 중인 MBC예능 ‘나혼자산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항의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경향신문 온라인 판의 관련 기사를 보니 기안84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 하려 했다고 합니다.
저는 기안84를 모르고 ‘나혼자산다’도 보지 않습니다.
‘웹툰’에 대해서는 번역 일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한국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져나간 온라인 연재만화입니다.
책으로 만화를 보던 시절과 달리 휴대전화의 스크롤 기능을 이용해
보는 웹툰은 이제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기사 때문에 시간여행을 해서 돌아간 곳은 2000년대 초
서울의 한 사무실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자신의 성을 이용해
다양한 이득을 취하는 여성 동료를 보았고 같은 여성으로서,
또 같은 인간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누군가, 제가 직장생활을 하던 때는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고 단언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잘 모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같다고, 혹은 같아야 한다고 믿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은 물건보다 다양합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제3, 제4의 성이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이 이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건, 프랑스에 ‘promotion canapé’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에 ‘casting couch’ 즉 ‘소파 승진’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니 저는 기안84가 웹툰을 통해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여성을 희화화’했다는
주장보다는,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하려 했다는 주장 쪽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종이신문에서 본 기사와 똑같은 기사를 온라인판에선 찾을 수 없어
관련 기사를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140952001&code=960100
화 키운 기안84의 사과문···“귀여움으로 승부보는 사회를 풍자? 그런 사회는 없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36·본명 김희민)가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으나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안84는 웹툰 <복학왕>에서 무능한 여성이 남자 상사와의 성관계로 정직원 채용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암시했고, 이에 대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는 사회를 풍자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여성들은 “그런 사회는 없다”며 기안84의 왜곡된 사회관을 비판했다.
기안84는 지난 13일 오후 네이버 웹툰 <복학왕> 304화 말미에 덧붙인 사과문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개 깨는 장면에 대해선 “극중 인물이 물에 떠있는 수달처럼 보이게 표현해보려고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앞서 그는 <복학왕> 303~304화 ‘광어인간’ 편에서 무능한 여자 주인공 봉지은이 인턴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깨부수고, 정직원에 최종합격한 모습을 그렸다. 40대 팀장은 자신이 회식 이후 봉지은과 스킨십을 계기로 교제하게 됐다고 말했으며, 성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일부 구독자들은 이러한 전개가 여성이 상사와의 성관계로 채용에 성공했다는 여성혐오적 사고가 담긴 것이라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기안84의 웹툰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기안84가 출연 중인 MBC <나혼자산다> 시청자 게시판엔 하차 요구가 쏟아졌다. 이에 네이버 웹툰과 기안84가 사과를 하고 웹툰을 수정했지만, 비판 여론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안84가 사과문에서 언급한 ‘이런 사회’ 대목을 언급하며 “기안84의 여성혐오적 세계관이 진짜 문제”란 지적이다.
여성들은 “성별로 인해 채용에서 불이익을 얻는 사례는 여성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여성이 귀여움, 즉 성적 매력을 이용해 채용에 성공하는 사회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성 지원자들을 뽑기 위해 여성 지원자들을 대거 탈락시킨 채용비리는 있지만, 그 반대 사례는 찾기 어렵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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