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일기 41: 매미 같은 사람, 물고기 같은 사람 (2020년 7월 21일)

7월이 깊어가는데 매미가 울지 않는다고 끌탕하는 제 목소리를

매미들이 들었나 봅니다. 창문에 서서 외출하는 가족을 배웅하는데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어디쯤에서 매미가 웁니다.

야호! 시계를 보니 1014. 제게만 의미 있는 숫자가 탄생합니다. 20207211014.

 

세계에는 1500여 종의 매미가 있고 그 중 15종쯤이 한국에 사는데,

한국의 매미들은 대개 1년에서 5년까지 애벌레로 산 후

날개 달린 성충이 되어 한 달 안팎을 산다고 합니다.

긴 준비기간을 보낸 후 지상에 나와 매앰 맴 쓰르르 공기를 흔드는

매미들은 어설픈 공연을 싫어하는 완벽주의자 뮤지션 같습니다.

 

그래서 옛 유학자들이 매미는 다섯 가지 덕을 갖추었다며 칭송했는지도

모릅니다. 나무위키의 매미 항목에 보면, “머리에 홈처럼 파인 줄을 갓끈과

비슷하게 보아 지혜가 있을 듯하여 첫째 덕목을 '문(文)'으로 보았고,

나무의 수액만을 먹고 자라므로 잡것이 섞이지 않고 맑아 '청(淸)'이

그 둘째 덕목이며, 다른 곡식을 축내지 않으므로 염치가 있으니

셋째 덕목이 '염(廉)'이고, 살 집을 따로 짓지 않으니 검소하다고 보아

'검(儉)'이 그 넷째 덕목, 계절에 맞춰 오고 가니 믿음이 있기에 '신(信)'이

다섯째 덕목이라고 보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고려와 조선의 왕들이

쓰던 왕관인 “익선관의 솟은 뿔과 오사모의 양쪽 뿔도 매미의 날개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https://namu.wiki/w/%EB%A7%A4%EB%AF%B8)

 

매미 생각을 하다 보니 이른 아침 홍제천에서 본 물고기들이 떠오릅니다.

푸르지오아파트 쪽 천변 길과 세븐일레븐 쪽 천변 길 사이에는

30미터쯤 되는 다리가 있는데, 사람이 이 다리 위에 서면 어른 팔뚝 만하거나

더 큰 물고기들이 다리 아래로 떼 지어 모여듭니다. 그리곤 누구 입이 큰가

경쟁하듯 다리를 향해 아가미를 한껏 열어 젖힙니다.

 

홍제천 곳곳에는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쓰여 있지만

다리 위에 서서 과자 부스러기 따위를 뿌려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물고기들이 다리를 향해 아가미를 벌리는 것은 공짜 먹이가 키운

조건반사 행동이겠지요.

 

“야, 이 비굴한 물고기들아, 물속에 먹이가 그리 많은데 왜 공짜를 바라냐?”

피골이 상접한 자가 죽지 않으려 저지르는 비굴을 눈감아주는 것도 어려운데

피둥피둥한 녀석들이 공짜를 바라는 게 미워서 속으로 쏘아주고 왔습니다.

 

저 물고기들이 저 비굴한 조건반사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입이 특별히 크고

등뼈가 휘어진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요. 그때 생물학자들이 그 희한한

몰골이 누적된 비굴의 결과라는 걸 알아낼 수 있을까요?

 

사람 중에도 매미 같은 사람이 있고 홍제천 물고기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매미처럼 다섯 가지 덕을 갖추지는 못한다 해도 비굴한 물고기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