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까지는 대개 7월 10일을 전후해 제 방 책상 앞에서
매미의 첫울음 소리를 들었는데, 작년엔 22일이 되어서야
산책길에서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이 블로그에도
기록해두었습니다.
대범한 사람들은 뭐 그까짓 매미 소리를 갖고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제겐 그 소리가 웬만한 친구의 목소리보다 반갑습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명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얘기하듯, 계절의 침묵은 인간이 스스로 야기한 회복 불가능한
세계를 의미하니까요.
인류가 이미 회복 불능 상태에 들어선 것을 생각하면
매미가 울지 않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며칠 전 ‘SBS스페셜’에서 ‘랜덤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남자들에게 매춘을 해서 돈을 벌고 친구들에게 같은 일을
소개하며 수수료를 받는 십대의 여자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며칠 후에는 같은 방송의 ‘궁금한 이야기Y’에서
십대 청소년들을 소위 ‘에미론’ ‘애비론’ 등으로 유혹해
그 집안을 알거지로 만든 ‘김왕관’에 관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겨우 19세의 김왕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소리 없이 빼앗은
그들의 전 재산은 그의 유흥비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범죄는 스마트폰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이런 식의 범죄가 거의
불가능했음을 생각하면, 인류는 최신 기술로
지금의 상황을 이루어낸 것이지요.
졸저 <쉿,>에도 썼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맹목적 편리와 이익 추구를
멈추라는 죽비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류는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선 그린벨트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은 해제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 중에 그린벨트를 해제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자가 많으면 해제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 나라에선 추억 속에서나 매미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그때는 제가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길 빌 뿐입니다.
매미가 살지 못하는 곳은 사람도 살 수 없는 곳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