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창문을 열면 뒷산의 산내음이 흘러들고
거의 온종일 새소리가 들립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뒷산 덕에 시간의 흐름과
시간이 하는 일을 시시각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집이 산기슭에 기대앉은 모양새이니
집안에 앉아 산의 품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기온도 지하철역이 있는 곳보다 2~3도 낮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아파트는 한 평당 가격이 매우 낮습니다.
고층이 아니고, 100세대 조금 넘는데 평수가 다양해
가격 형성이 어렵다고 합니다. 주민들 중에 아파트 값이 왜
이렇게 싸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보다 최근에 이사 온 사람들의
불평이 높습니다. 집 값이 싸서 온 사람들이 오자마자
싸다고 불평하니 실소가 나옵니다.
조경을 하면 보기에도 좋고 아파트값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힘을 얻어 아파트 앞에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옮겨 심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으면 새 나무로 교체해준다고 했습니다.
멋진 소나무들이 아파트 앞에 선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 동 앞의 두 소나무는 여전히 푸른데
우리 옆 동 소나무들의 푸른 잎은 갈색으로 변한 지
한참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가 봅니다.
제발 이겨내다오! 아픈 나무들 옆을 지나갈 때마다
기도하지만 아무래도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나무들을 보면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Herbert Spencer:1820-1903)가 처음 사용했다는 용어
‘적자생존(適者生存)’이 떠오릅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된다는 뜻이지요.
제가 저 나무들에게 이렇게 마음을 쓰는 건 저도 그들처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세계가 갈수록 낯설어
‘적자(適者)’가 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태연할 겁니다. 조경업자는 죽은 소나무를 뽑고
새 나무를 심을 거고, 사람의 세계에서도 적자가 부적응자를 대체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