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나는 한국이 좋다(2020년 3월 5일)

divicom 2020. 3. 5. 17:25

어제 예고한 대로 3월 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좋은 칼럼을 오늘 또 하나 옮겨둡니다.


이 칼럼은 우선 형식이 새롭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화자가 되어 정치, 사회, 종교 문제 등을 관찰, 비평하는데

이런 식의 풍자는 한국의 칼럼니스트들 사이에서 아주 보기 드문 것이지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사회가 '정지'되었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보기엔 이 바이러스 덕에 비정상으로 치닫던 한국사회가 정상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집이 늘며

쌀 소비도 늘었다고 하니까요.


서울에서 방 얻어 사는 경상도 학생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겁먹은 집주인들로부터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고, 그 학생들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서울에선 절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말라고 조언한다는 말을 들으니 실소가 나옵니다.


수십년 지속된 경상도 정권 아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단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는데, 이제는 바이러스 때문에 경상도 사람들이 불이익을 겪으니 

세상 일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만사는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는 옛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집에만 갇혀 있어 '답답하다'고 하는 분들, 오랜만에 가족 얼굴도 찬찬히 들여다 보시고

'너무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도 읽어 보시지요. 

지금은 밖으로만 돌던 우리의 눈을 우리의 내면으로 돌릴 때이니까요.  



조호연 칼럼]‘나는 한국이 좋다’

조호연 논설고문

나는 코로나바이러스다. 다들 나를 원망하지만 당치 않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을 숙주 삼아 생존하려고 할 뿐이다. 내가 발이 있나 손이 있나. 인간이 아니면 단 1㎜도 이동할 수 없다. 자기들이 옮겨놓고 내 탓을 하니 어처구니없다. 나더러 인간의 약점과 빈틈을 파고든다고 한다. 그건 인간의 언어일 뿐이다. 생명체가 보다 살기 좋은 곳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조호연 칼럼]‘나는 한국이 좋다’

나는 한국이 참 좋다. 사실 중국은 더 좋았다. 인구가 많은 데다, 여론통제와 진실 은폐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나아가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리원량 같은 의사를 알아서 물리쳐주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다. 도쿄 올림픽 때문인지 방역에 소홀한 일본, 검사 한 번에 100만원씩이나 하는 미국도 나쁘지 않다. 애초 한국은 내가 서식하기에 까다로운 곳이다. 진단이 빠르고 보건 인프라와 행정력이 우수하다. 원래대로라면 뚫고 들어갈 구멍이 없다. 하지만 한 달여간 공격하다보니 허점이 드러났다. 신천지가 주요 통로였다. 초밀접 예배문화와 비밀주의로 신도끼리 서로 감염시키고, 이어 지역사회 전체로 퍼뜨려주니 내게는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보수 야당·언론의 공로 또한 인상적이다. 전방위적 정부 비판으로 여론을 가르고 방역 역량을 약화시켰으니까. 특히 ‘골든 타임’에 비난의 화살을 중국인에게 돌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물론 나는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오류와 무능에도 힘입은 바 크다.

나는 인간이 협력하고 연대하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갈라지면 강해진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 여야로 분열돼 있다. 이들은 협력하고 연대하는 법이 없다. 뭉치면 뭐든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서로에 대한 분노와 증오 탓에 기꺼이 함께 망하는 길을 간다. 시민 역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아산·진천에서 하나가 된 듯하더니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달라졌다. 각자도생 상황에서는 시민은 서로를 그저 바이러스 전파 매개체로만 보게 된다. 이들이 각성해서 시련을 함께 겪는 공동체 구성원, 동료 시민이라는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기-승-전 중국 때리기’의 근거가 부족한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 내 중국 국적 감염자는 10명이 채 안되고, 이들이 직접 감염시킨 사례는 2명뿐이다. 생각해보자. 한국 방문 중국인이 확산 근원이라면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에서 환자가 가장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대구·경북에서 환자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방문 중국인이 주요 감염원일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이 지역에 신천지의 성지가 있고 가장 번성한 곳이란 사실을 외면하면 안된다. 신천지 교인인 31번 확진자 발견 이후 불과 10여일 만에 환자가 수십명에서 5000명 이상으로 솟구친 사실이 주요 전파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해준다.

보수세력은 나를 막는 것보다 정부가 잘하는 게 있을까봐 걱정하는 것 같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신천지 책임론에 “특정 교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왔다. 최근에야 신천지 측에 “허위보고나 비협조는 절대 안된다”고 말을 바꿨지만 진심은 모르겠다. 이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다.

과거 나는 한국에서 여러번 재미를 봤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신종플루로 70만명 넘게 감염되고 270명이 숨졌다. 박근혜 정부 때도 ‘그 유명한’ 메르스로 또 한번 한국을 혼내줬다. 그런데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는 단 한 명의 환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보수정권 친화적이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그들은 국민의 생명·안전에 관한 분야도 시장에 맡긴다. 시장은 생명·안전보다 돈을 중시한다. 손해가 난다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게 대표 사례다. 진보정권은 생명·안전 분야만큼은 공공성을 높이는 편이다. 자연히 방역망도 촘촘해진다.

나는 신천지를 응원한다. 그 종교 교주는 코로나 사태가 “신천지의 부흥을 저지하기 위한 마귀의 짓”이라고 했다. ‘최대 도우미’인 그가 최근 방역에 협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 못내 실망스럽다. 본심이 아니기를 빈다. 나는 또한 황교안 대표를 지지한다. 그가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 덕에 한국에서 잘 지내고, 진화할 수 있었다. 운명공동체이자 동지적 유대를 강하게 느낀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부정할 테지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032046005&code=990100#csidx1edea082d0e5de2a742517ab16094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