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부익부' 정년연장에 반대한다(2019년 10월 8일)

divicom 2019. 10. 8. 10:18

월급이 없는 생활을 한 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달 들어오는 돈은 쥐꼬리만한 국민연금뿐이니 생활은 늘 빠듯합니다.

무엇보다 기분을 우울하게 하는 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바로 도울 수 없고

선물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저처럼 '돈은 모으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의

노년은 척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백화점이야 원래 좋아하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음악회에 가본 지도 한참입니다.


그래서 요즘 후배들을 만나면 늘 얘기합니다. '적금'을 들라고. 

적금 이자가 싸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적금의 장점은 돈을 쓰지 않고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후배들 중엔 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얘기해 주는 친절한 친구들도 있는데

그들에게도 얘기합니다. "다른 건 다 김흥숙처럼 살아도 돼요. 하지만 적금은

들어야 해요." 친구들이 적금을 들었다고, 적금이 목돈이 되었다고 '보고'하면

잘했다고 칭찬해줍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니 월급 없는 생활이 어떤지 잘 알 수 없을 겁니다.


'정년'은 그 월급의 끝을 뜻합니다. 그러니 대개의 회사 인간들은 '정년 연장'을 바랍니다.

특히 자녀들을 다 키운 초로의 일꾼들에게 정년 연장은 꿈의 실현과 같습니다.

예외는 있겠지만 대개는 부를 축적하며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다가 

늘어난 부를 자식들에게 물려 주겠지요.


그렇지만 그들에게 반가운 정년의 연장이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도 좋은 걸까요?

정년 연장이 이 사회의 양극화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적어도 현재의 제도와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입니다.

마침 경향신문 김민아 선임기자가 이 문제에 관해 발언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주변을 살펴 보면 머리가 굳은 사람일수록,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회사나 조직의 붙박이가구가 되어 정년을 맞는 일이 많습니다.

실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일터에 나가기 싫어하는데

그들의 정년까지 연장되면 실력 있는 일꾼들이 직장을 떠나는 일이 더 흔해질 겁니다.  


지금 이 나라는 노인이 성숙한 인간으로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맞도록 돕는 대신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영원히 죽지 않도록 돕고 있습니다.

노인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무조건 정년을 연장해 주지 말고,

기득권을 내려 놓고 각자 깜냥에 맞는 일을 하며 잘 늙어 죽도록 도와야 합니다. 

더구나 적당한 가난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요.



김민아 칼럼]‘부익부’ 정년연장에 반대한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논설위원실을 떠나 취재현장에 돌아온 지 두 달쯤 된다. 기삿거리를 찾고, 자료를 읽고, 현장에 가고, 취재원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하고, 기사 계획을 확정하고, 기사를 쓰는 일. 보직부장을 맡기 전까지 20년가량 매일 했던 일이니 낯설지는 않다. 문제는 업무 효율성이다. 순발력이 떨어졌다. 취재를 하다보면 ‘허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멋지게 뛰어넘거나 요령 있게 비켜가야 한다. 이 대목에서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다. 집중력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신문 최종판 마감 후 텅 빈 편집국을 좋아했다. 혼자 컴퓨터와 씨름하다 창밖이 부옇게 밝아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최근 토요판 커버스토리를 마감하며 편집국에서 두 번의 새벽을 맞았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젠 이렇게 하면 안되겠구나, 나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김민아 칼럼]‘부익부’ 정년연장에 반대한다

정부가 2022년에 ‘계속고용 제도’ 도입을 검토키로 했다. 기업이 60세 정년을 넘긴 고령자를 의무 고용하되,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 중 선택하게 하는 방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노인의날을 맞아 “어르신들이 정규직 일자리에 더 오래 종사할 수 있도록 정년을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년연장 논의가 사실상 본격화한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의 불일치로 ‘소득 크레바스’가 확대되고 있다는 게 배경이다.

인구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정년을 연장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라는 노인빈곤율이 개선될까? 청년고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정년연장 외에 노동력을 확보할 길은 없을까? 그래도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 견해를 들어봤다.

첫째, 정년연장은 ‘노후 격차’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노인빈곤 대책의 타깃이 되어야 할 ‘폐지 줍는 노인’은 정년연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정규직 등 일부 상층 노동자만 정년연장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LAB2050 대표 역시 “영세 소기업에서는 60세 정년도 의미가 없다. 좋은 직장 들어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노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둘째, 청년고용에 미칠 영향은 보다 엄밀히 살펴봐야 한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한국노동연구원이 연 ‘고령시대, 적합한 고용시스템의 모색’ 세미나에서 “고령노동력이 청년노동력과 보완관계라는 연구가 있으나, 업종·직종별로 미시적 분석을 할 경우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계속고용 제도는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강국 교수는 “일본은 아베노믹스 이후 경기가 나아지고 고용률이 높아졌다”며 “경기가 좋지 않은 한국 상황에서, 기업이 고령층 재고용 압력에 직면할 경우 청년고용을 줄이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대안이 있다. 만 0~14세 자녀를 둔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55.2%로 OECD 31개국 중 27위다(국회 입법조사처).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노동연구원 세미나에서 “고령노동은 급감할 청년노동을 대체하기 어렵다”며 “경력단절 문제가 심각한 30대와 40대 초반 여성 고용의 확대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넷째, 정년연장이 불가피하다면 정교한 보완책은 필수다. 전문가들은 연공급제(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형태) 약화 및 강력한 임금피크제 시행 등을 주문한다. 한 노동경제학자는 익명을 전제로 “공공부문에서 연공급제를 축소하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등 개혁을 선도해 민간부문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조치 없이 정년을 연장할 경우 최저임금 인상 때의 혼란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년연장 자체에 부정적인 이원재 대표는 “인생 다모작을 지향하는 고용정책과 함께 기초연금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2027년 이전 정년이 연장되면 나는 수혜자가 된다. ‘갓물주’가 아닌 한, 오래 일할 수 있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드물 터다. 하지만 청년이나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보완책 없이 정년부터 늘리는 데는 반대한다. 기존 임금체계 아래서 정년연장 혜택을 입는 것도 낯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51세인 나의 노동생산성은 40대에 미치지 못한다. 55세가 되고 60세가 되면 더 떨어질 것이다. ‘월급 루팡’(하는 일 없이 월급만 타 가는 직원)은 싫다. 일한 만큼 떳떳하게 받으며 다니다가 명예롭게 떠나고 싶다. 정부는 나 같은 노동자를 위한 길을 찾아달라. 그 길이 없다면, 나는 정년연장 대신 64세에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는 쪽을 택하겠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72043025&code=990100#csidxd40fcdb3b33e74483fbbb2716ea09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