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 3: 노인의 짐(2019년 7월 18일)

divicom 2019. 7. 18. 12:47

보통 일주일에 한 번 구순의 어머니를 만나 점심을 먹습니다.

물론 가끔 '번개 만남'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저기서 걸어오시는 어머니를 보며 속샹해 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의 손에 짐이 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텃밭에서 손수 가꾼 고추, 상추, 깻잎, 쑥갓... 제법 무겁습니다.


어머니의 핸드백도 가끔 원망스럽습니다.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이까짓 게 뭐가 무거워?" 하시며 

오히려 제가 과잉 반응을 보인다고 하시지만 저는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시는 게 싫습니다.

어머니의 변해가는 체형을 보며 어머니 몰래 눈시울을 적신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길을 걷다 보면 일생 동안의 노고로 인해 다리와 척추가 휜 노인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습니다. 나이들면 젊은 시절에 비해 키가 10~15센티미터씩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 또한 노동과 무거운 짐의 무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식자재마트라는 식료품 전문 매장이 생겼는데

그곳의 고객들은 대개 노인들입니다. 자그마한 노인들이 커다란 채소 뭉치를 들고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얼마나 싸기에 저렇게 많이 사들고 고생을 하시는 걸까요?

저건 검약일까요, 욕심일까요?


식자재마트가 개장한 첫날 잠깐 가보니 좁은 매장에 진열대를 많이 놓은데다

손님이 너무 많고 손님용 카트가 너무 커서 매우 복잡했습니다.

바깥 마당에서도 채소와 수박 등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식자재마트와 대각선을 이루는 위치엔 하나로마트가 새로 생겼으니

부근의 작은 마트들과 구멍가게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자재마트 건너편 간판도 없이 채소와 과일을 싸게 파는 가게를 보니

직원들만 보이고 손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에도 저 가게를 자주 찾았지만

이제부터는 더욱 우선적으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제 오후 그 가게로 들어가니 카운터의 주부사원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전에는 붐비던 시간이었지만 가게 안은 한산했습니다.

제가 "요즘 저 식자재마트 때문에 신경이 쓰이겠어요" 하자, 그이는

"요즘 우리 사장님이 잠을 못 자요. 손님이 다 저기로 가버려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꽈리고추 두 바구니를 3천원에 사서 나오려는데

그이가 소리쳤습니다. "열무, 얼갈이 세 단에 천원!"

더운 날 그냥 두면 쉬 무르니 밑지고 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이의 목청 값이라도 주어야겠다 하고

열무 두 단과 얼갈이 배추 한 단을 샀습니다.

그이가 커다란 투명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가기 좋게

봉지를 묶어 주었습니다.


천원을 내고 봉지를 받아들자 마자 '아차!' 했습니다.

봉지가 너무나 무거워 도저히 들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손님 없는 가게에서 이미 산 것을 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낑낑거리며 버스정거장으로 갔습니다.

늘 걸어다니던 거리였지만 그 무거운 봉지를 들고 걸을 수는 없으니까요.

세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 다시 낑낑대며 집으로 가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노인들을 보며 쯧쯧 혀를 차곤 했는데

제가 바로 그런 노인이 되었으니까요.

이래서 남의 말을 하면 안 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