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2: '어르신'과 막대사탕(2019년 7월 8일)

divicom 2019. 7. 8. 16:39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을 열며 '어, 이 사람이 내게 필요한 걸 어떻게 알았지?!'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 이게 뭐지? 왜 내게 이런 걸 주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할 때도 있습니다.


선물을 보면,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물이 실패하는 경우는 대개 주는 사람이 받을 사람에게 필요한 것보다 

자신이 주고 싶은 걸 줄 때입니다.


며칠 전 동주민센터에서 다음 달이면 법적인 '어르신'이 된다는 말과 함께 

어르신이 되면 받게 되는 여러 가지 혜택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선물이 든 종이가방을 받았습니다. 


가방의 맨 아래에는 귀족적 분위기가 풍기는 남색 리본으로 장식된 

제법 큰 하얀 상자가 있고, 그 위엔 치약 2개, 작은 상처에 붙이는 밴드가 든 

얇은 종이지갑 2개,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로제파스타의 분홍색 크림 빛깔 

막대사탕 2개가 있었습니다.

주민센터 직원은 '후원자들'이 보내준 거라고 했습니다.


치약은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니 그렇다치고

노인들에게 위생밴드와 막대사탕을 선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인에겐 위생밴드보다 파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혹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고 남은 것을 노인들에게 보낸 걸까요?

맨 아래 상자엔 무엇이 들었을까요?

치매 예방을 위한 레고블럭이 들어 있으면 좋을 텐데...


예쁜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며 저도 모르게 실소를 했습니다.

모 교회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인 하얀 세면 수건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상자는 수건보다 훨씬 크니 그야말로 과대포장이었지요.


왜 수건을 선물한 걸까요?

교회 행사에서 쓰고 남은 걸까요?

주름이 늘어가는 얼굴이나마 자주 씻으라고 준 걸까요?

교회 이름은 왜 또 그리 선명하게 박아 놓은 걸까요?

바로 몇 분 전 주민센터 직원이 종교가 있느냐고 묻기에

없다고 대답까지 했는데 왜 제게 이 수건을 준 걸까요?


새로 '어르신'이 되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선물하고 싶은 분들,

'어르신'이 되면 받는 게 많으니 굳이 선물하려 애쓰지 마세요.

꼭 선물을 해야 한다면 스케치북이나 노트, 색연필이나 펜, 

아니면 진짜 밀랍으로 만든 좋은 양초 두어 자루를 주세요.

평생 세상일을 좇느라 정신없이 살았으니 이젠 자기를 좀

들여다보라고 일깨워 주는 선물을 하세요. 

노인을 아이 취급하는 막대사탕 같은 것은 주지 마세요.


생각난 김에 맛이나 볼까 하고 찾아보니

그새 막대사탕의 색깔은 고구마 빛으로 변하고

표면은 느른히 녹았습니다. 

자신의 노화 속도도 따라가기 힘든 노인들에게, 

이렇게 빨리 늙는 사탕 따윈 주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