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폭염, 에어컨, 지구온난화(2018년 8월 22일)

divicom 2018. 8. 22. 15:23

'현재 날씨'를 검색하니 섭씨 37도. 그래서 이렇게 땀이 나나 봅니다.

제 체온과 창밖의 온도 중 어느 것이 높을까요,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더위가 제 머리 속 나사 몇 개를 풀어 놓았는지 이 여름을 겪으면서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유례 없는 폭염 끝에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조금 전에도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에어컨 빵빵 틀고 살았느냐고 하기에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다고 했더니

"그럼 찜질방에서 사셨네요?" 합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내가 죽음에게 가지 않으니 친절한 죽음이 내게로 와 주었다'고 했는데,

제가 찜질방에 가지 않으니 친절한 찜질방이 제게로 와 준 것일까요?^^


하루에 몇 번씩 물을 끼얹으면서 여름을 보냈지만

늘 감사하는 나날이었습니다.

물이 있어서 끼얹을 수 있으니 고맙고

옥탑 단칸방이 아니어서 고마웠습니다.

뒷산의 매미 소리와 짙푸른 나무들 덕에 

이 더위에 괘념치 않는 존재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고마웠습니다.


그나저나 내년에도 이렇게 더울 거라며 에어컨을 사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수종 선배도 그런 얘기를 들으시는 것 같습니다.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에어컨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와

에어컨 없이 또 이런 여름을 보내다가는 온열질환으로 쓰러질지 모른다는 위협 사이에 놓인

김 선배와 저 같은 사람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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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난민'이 쏟아질 텐데

2018.08.20

“우리 집에도 에어컨 설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올여름에 집안 이슈가 하나 생겼습니다.  에어컨 설치가 긴급한 가정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섭씨 37도가 넘는 7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자다가 양 팔등의 감각이 이상해서 불을 켜고 보니 벌건 두드러기가 우글우글 올라와 있었습니다. 식중독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아프거나 크게 가렵지 않기에 아침에 병원에 갈 요량으로 응급조치로 얼음 팩을 몇 개 수건에 감아 팔을 얹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두드러기는 가라앉았으나 불긋불긋한 반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제야 그게 땀띠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한테 물어보지 못했지만 체온을 훨씬 뛰어넘는 갑작스런 기온 상승에 몸이 반응한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어릴 때 땀띠가 생긴 적이 있지만, 성인이 되면서 땀띠를 별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8월 들어서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에어컨 없이 견디는 유일한 처방은 수건에 싼 얼음 팩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식구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지냈습니다. 모두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고, 냉장고와 에어컨의 합창 기계음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무엇보다 언덕 위에 위치한 아파트 7층은 창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솔솔 불어 한여름 사나흘만 참으면 시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보니 매년 여름만 되면 뉴스에 귀 아프게 나오는 에어컨 전기료가 ‘0’이어서 신경 쓸 게 없어서 좋았습니다. 

집에서 에어컨을 멀리하며 살다보니 에어컨은 사치품이란 옛날 의식이 그대로 뇌리에 박혀버린 듯했습니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항상 에어컨을 켜놓고 사는 것을 보면서 “좀 참으며 살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폭염으로 이런 생각은 사라져버렸습니다. 
폭염 뉴스를 들으며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더위가 기온 관측 117년 만의 사상 최악의 폭염이며, 우리나라 에어컨 보급률이 80%가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아파트 7층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후끈한 열파를 맛보고는 시내에 납작 엎드린 서민 주택가에서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이 폭염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어컨 없는 인구 20%는 바로 1,000만 명입니다. 대통령도 나서서 에어컨 걱정을 하는 우리나라가 되었습니다.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에어컨을 켜는 집과 에어컨을 켤 수 없는 집으로 새로운 계층 구분이 생겼습니다. 에어컨 냉방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으로 좋은 직장과 나쁜 직장이 구분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점점 올라갈 것이라는 과학적 개연성과 세계가 온통 폭염과 가뭄과 산불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에서 올해 폭염이 일시적인 기상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기록이 깨지면 흥분되는 일이지만, 폭염 기록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요? 섬찍한 결과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아기들이 더운 공기에 숨이 막혀 죽고, 노약자들이 퍽퍽 쓰러지는 일이 벌어진다면 겪어보지 못한 재앙이 될 것입니다. 

올해 폭염은 머지않아 꺾일 테지만 내년에는 어떤 기록이 나올지 모릅니다. 내년, 아니면 내후년 여름을 생각해서 정부가 폭염난민 대비책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도의 편리한 소비문화와 행정서비스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은 인내심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지식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대안이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추위에 비해 더위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기록을 깨는 폭염이 다시 오면 사람들이 대책을 세우라고 정부에 야단칠 것입니다. 아마 정부와 서울시는 지하철을 폭염 피난처로 긴급 전환하는 예행연습을 해둬야 할지 모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