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걸려 있다 내려 오려니 시간이 꽤 걸렸겠지요.
마침내 검은 구름이 착지하며 굵은 빗줄기가 세상을 씻기 시작합니다.
문득 백록담이 생각납니다.
백록담에도 비가 내릴까, 그러면 호수의 물이 늘어날까,
그러면 물 마시는 사슴도 늘어날까, 그러면 3천 미터 호수 둘레는 어떻게 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름이 아름다워서일까요?
흰 사슴이 그 물을 마셨다는 옛 이야기 때문일까요?
가보지 못해서일까요?
백록담은 세상의 장소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백록담 생각을 하며 책꽂이를 보니 정지용 시집 <白鹿潭(백록담)>이 눈에 들어옵니다.
1987년 9월에 기민사가 출판한 '기민근대시선9'입니다.
누렇게 변한 종이가 여름날 시원한 온돌방 바닥 같습니다.
31쪽에서 33쪽에 걸쳐 시 '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길지 않은 시라 한 쪽에 앉혀도 되련만 세 쪽에 나누어 앉힌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혹시... 시 한 줄 읽고 창밖의 비 한 줄기 보고
또 한 줄 읽고 또 한 줄기 보라는 것일까요?
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죵죵다리 깟칠한
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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