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제주의 난민, 냉대와 환대 사이(2018년 6월 27일)

divicom 2018. 6. 27. 09:50

종일 누운 상태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감사가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누워 있게 된 이유의 주요 원인이 고통보다는 피로 때문이라는 사실부터

모두가 죽어라 일하는 24시간을 누워서 보내도 아직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

가족들의 돌봄을 받고 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줄기차게 내리는 비 덕에 기온이 내려가 땀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심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거쳐

이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까지... 감사의 이유엔 끝이 없습니다.


제주에서 좌불안석하고 있을 예멘 난민들...

그들도 자신들이 지구촌 그 어디도 아닌 제주에 있어 감사하다고 느끼게 할 순 없을까요? 

아래는 제주의 난민들에 대해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이 경향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정동칼럼]제주 난민, 냉대와 환대 사이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6·25전쟁이 휴전되던 해인 1953년. 세계보건기구(WHO) 직원으로 한국에서 전쟁 피란민을 돕던 시리아인 의사 파살아르드 박사는 한국인 소녀 2명을 시리아로 입양해간다. 당시 두 소녀의 나이는 모두 6세.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 소녀들은 파살아르드 박사 부부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란다. 그중 한 명인 ‘로라’는 다마스쿠스 대학에 진학, 약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뒤 쿠웨이트 주재 한국통상대표부에서 총영사의 비서로 활약한다. 가슴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 스토리는 1974년 국내 모 일간지의 아랍세계에 관한 기획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에 대한 반대여론과 혐오를 목도하면서 지난해 난민 관련 책을 준비하다 발견한 그 신문자료를 다시 찾아봤다. 환하게 웃고 있는 로라의 빛바랜 사진을 보노라니 난민 고아 소녀를 보듬어준 시리아인 의사부부에게 감사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한국은 유엔이 창립된 뒤 공식적인 난민 구호활동의 도움을 처음으로 받은 나라다. 6·25전쟁으로 60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포화를 피해 피란길에 올랐다. 이때 한국을 도왔던 나라 중에는 선진국뿐 아니라 라이베리아, 이라크, 스리랑카 등을 비롯해 현재 내전으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시리아도 있다. 이들 나라는 의료 및 물자 지원은 물론 전후 복구를 도왔고 전쟁고아를 입양하기도 했다. 그게 불과 6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난민에 대해 인색한 나라다. 1970년대 중반, 월남 패망 이후 베트남 출신 보트피플 2300여명이 부산 앞바다를 찾았지만 단 한 명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온갖 인연이 얽혔던 점을 감안하면 가혹한 처사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을 찾은 시리아인 1300여명 중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단 4명에 불과하다. 전체를 통틀어 한국의 평균 난민인정률은 4.1%. 전 세계의 10분의 1 수준이다.

난민을 받아들이면 좋지만 자칫 감당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의 눈길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Oxfam international)의 2016년 보고서를 보면 이는 섣부른 기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경제 규모에 비례해 계산할 때 한국은 난민에 대해 책임져야 할 몫의 0%, 즉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거울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이자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기조차 창피한 실정이다.

살다보면 많은 부분 자신의 뜻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이다. 예기치 않게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한다. 크고 작은 불운에 울고 웃으면서 불편함을 견디고 불안함을 다독이지만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취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인 사람 인(人)은 결국 의지하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난민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경계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은 인류 공동체가 연대라는 인권 가치의 실현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고심 끝에 만든 것이 1951년 제정된 유엔난민협약이다. 협약은 난민의 존엄성과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국제법적 의무가 가입국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난민협약 가입국이자 자체적으로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한국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난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지구촌 국가가 함께 걸머져야 할 사명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는 부랑아처럼 보이는 장발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맞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고통받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므로, 잘 오셨소. 그리고 내게 감사하지 말고, 내가 당신을 내 집에 맞았다고 말하지도 마시오. 여기는 피난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집이오.”

개개인이 이방인에게 문을 열고 장소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사회 안에 좁은 자리라도 내주며 환대하는 일은 공공의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소꿉놀이를 해도 한쪽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욕심 많은 아이라도 기꺼이 장난감을 내준다. 그게 사회다. 게다가 난민에 대한 환대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만이 아니다. 난민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다단한지를 성찰할 수 있으며 인간에 대한 깊이도 깊어질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어 제주 땅을 찾은 난민에게 작은 환대를 모아내는 자세에 우리의 국격이 달려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사고다. 한국이 6·25 직후의 시리아보다 도울 여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262028045&code=990308#csidx8e86180040b86bf8d4971e0f962c76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