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은진미륵의 얼굴(2018년 4월 21일)

divicom 2018. 4. 21. 10:52

경북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은 알아도 충남 논산 관촉사에 있는 은진미륵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이 석조 입상에 대해 꽤 친근하게 느끼는데, 그건 제가 '은진미륵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날 신부화장을 하러간 미용실에는 화장하는 사람--요즘 말로 하면 메이크업 아티스트--이 둘이었는데 

1번은 못하고 2번은 잘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꼭 2번에게 하라고 당부한 까닭에 

저도 그 사람에게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층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이층으로 올라가니 듣던 대로 1번과 2번이 

있는데 2번 앞엔 줄이 길고, 1번 앞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저처럼 '2번에게 하라'는 얘길 듣고 왔겠지요.

1번은 신문을 펼쳐 들고 있었지만, 신문을 읽는 게 아니라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민'은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아직 몰랐던 저는 1번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1번은 얼른 신문을 내려놓고 제 얼굴을 화장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이 끝났습니다.

거울을 보라기에 보았더니, 안하던 화장을 한 얼굴이 낯설고 이상했습니다.

본래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저는 그런가 보다하고 결혼식장으로 갔는데

저를 본 어머니가 놀라신 듯 탄식하셨습니다.

"세상에, 은진미륵이네! 신부 화장을 하면 더 이뻐져야 정상인데 더 미워졌어."


그렇게 저는 은진미륵과 인연을 맺었고, 그런 얘기를 한 게 제 어머니만이 아니었으니 

화장이 잘못된 게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었습니다.

결혼식은 짧고 결혼은 긴데다, 신랑의 눈엔 제가 아주 예뻤다고 하니까요.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있다'는 말이 참말인가 봅니다.


결혼식 사진을 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보게 되면 저도 남들도

다 웃습니다. 작은 입은 더 작게 넓은 얼굴은 더 넓게 만들어 놓았으니 

"신부화장을 해서 더 미워지는 일도 있구나!" 하는 말을 들은 게 당연합니다.


그때 2번에게 화장했던 신부들은 저와 달리 모두 어여쁜 신부가 되었습니다. 

저보다 조금 늦게 결혼한 제 친구도 2번에게 화장하고 나더니 배우 뺨치게 예뻤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화장을 지우고 난 후엔 예뻐졌던 신부들도 저처럼 미워졌던 신부도

모두 제 알굴로 돌아갔겠지요. 그러니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 해도 또 1번 앞에 앉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몇 시간 지속되는 화장, 예뻐지는 것도 좋지만 1번의 외로움과 무안함을 잠시라도 덜어 주고 싶으니까요.


문화재 전문가들은 신부화장처럼 곧 지워질 어여쁨을 다루지 않고 

영구적인 아름다움을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조차 오랜 세월 동안 은진미륵을 폄훼했다고 합니다.

머리와 얼굴이 지나치게 커서 균형미가 없다고.


요즘 세상 곳곳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들처럼 아름다움은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머리가 커도 아름다울 수 있고 발이 커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한 가지로 규정하고 규격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모든 것이 규격화하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미국 배우 맥 라이언의 얼굴을 보면

그런 '美'의 규격화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뒤늦었지만 문화재청이 은진미륵을 국보 323호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美' 규격화가 점차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오늘 경향신문에 실린 이기환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여적]은진미륵의 명예회복

이기환 논설위원

은진미륵’으로 알려진 충남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못생긴 불상’으로 폄훼됐다. 일본의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균형미가 없고, 머리가 지나치게 크며 면상 또한 평범하다”고 혹평했다. 고고미술사학자인 고 김원룡 박사도 “전신의 반쯤 되는 거대한 얼굴은 삼각형이어서 턱이 넓고… 일자로 다문 입, 넓적한 코와 함께 가장 미련한 타입”이라 했다. 김원룡은 특히 “은진미륵이야말로 신라의 전통을 완전히 잃어버린 최악의 졸작”이라고 ‘디스’했다.

1000년 이상 그 자리에 그냥 서있는 죄밖에 없는 은진미륵으로서는 어이없이 당해온 ‘의문의 1패’였다. 지나는 사람마다 ‘삼등신’이니 ‘미련한 대두’니, ‘최악의 졸작’이니 하고 손가락질하다 못해 각종 언론 지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술논문에까지 대놓고 ‘못생겼다’고 비판했다. 굴욕도 이런 굴욕도 없다.

왜 이런 지청구를 당한 것일까. 은진미륵보다 약 200년 정도 앞서 조성된, 그 잘생긴 통일신라시대 석굴암과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장동건·송중기 급인 ‘꽃미남’ 석굴암 본존불과 견주니 ‘오징어’로 취급된 것이다. 김원룡은 “완벽한 신체비율로 인간이 도달하는 최고 수준의 조각품인 석굴암에 비해 예술가의 기백과 기술을 완전히 잊어버린 은진미륵”이라 품평했다. 석굴암에서 정점을 찍은 한국 예술이 은진미륵에 이르러 퇴보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비아냥이다.

“석굴암 조각들은 신라 불공들만이 이룩할 수 있는 자연주의와 표현주의의 신묘한 융합이다. 신라가 멸망한 935년 이후…고려 불공들은 큰 돌을 쪼아서 미술품을 만들어내는 따위의 예술가 기백이나 기술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 단적인 예가 유명한 논산의 미륵불(은진미륵)이다.”(김원룡의 <한국미의 탐구>, 열화당, 1978)

오죽하면 얼굴 큰 사람에게 ‘은진미륵 같은~’이란 수식어를 붙이겠는가.

그러나 쏟아지는 온갖 외모비하발언을 묵묵히 견뎌온 보람이 있나보다. 문화재청이 20일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감각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은진미륵을 국보(제323호)로 승격지정했으니 말이다. 하기야 광종(970년)~목종(1006년) 사이 고려 임금이 직접 파견한 석공 100여 명이 36년 간이나 힘들여 조성한 불상이다. 터무니없는 졸작일리 있겠는가. 일단 자연 화강암 암반 위에 허리 아래와 상체, 그리고 머리 부분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해서 연결했다. 키가 18.2m에 돌의 무게만 258t인 거대한 불상을 조성하는데 들인 공력을 생각해보라. 요즘에는 당나라 조각의 영향 아래 있던 통일신라시대와 달리 고려 특유의 독창성을 담은 ‘개성파’ 불상으로 해석되고 있다. 잘 빠진 꽃미남은 아니지만 강한 원초적인 힘을 풍기는 성격파 배우 같다는 것이다. 은진미륵으로서는 다양해진 예술성과 미의 기준에 따라 얻게 된 1000년 만의 명예회복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01611001&code=990201#csidx644e18d66f202bd9c6064ef783d5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