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미세먼지와 마스크(2018년 4월 13일)

divicom 2018. 4. 13. 10:10

매일 '오늘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침에 본 수치가 높으면, 뿌옇던 하늘이 파래진 다음에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숨어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일이 흔합니다.


며칠 전엔 오랜만에 공기도 깨끗하고 하늘도 말 그대로 '푸른 하늘'이었지만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라일락 향기가 진동해도 철벽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향기를 맡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착잡했습니다.


저도 마스크를 할 때가 있고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다닐 때도 있지만

늘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 환경이 오염되면 그 자연을 구성하는 구성원들 또한

변화 또는 진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미세먼지를 모르고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 사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마침 김수종 선배가 자유칼럼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선배는 이 글에서 '아는 게 병'이라는 속담을 인용하셨는데

저는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을 생각합니다. 

그는 그 두려움은 '후퇴를 전진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노력을 마비시키는 

비이성적이고 정당화할 수 없는 공포'라고 했습니다.



So, first of all, let me assert my firm belief that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fear itself — nameless, 

unreasoning, unjustified terror which paralyzes needed efforts to convert retreat into advance.

--위키피디아 영어판에서 인용.




www.freecolumn.co.kr

미세 먼지가 문화를 바꿉니다

2018.04.12

어제 오전 10시쯤 모임이 있어 외출했습니다. 아침 방송을 별로 안 보는 터라 날씨 정보를 전혀 모른 채 집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기온은 따뜻하고 공기는 상쾌했습니다. 전날 밤 비바람이 정체된 공기를 밀어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상쾌하네요. 미세먼지도 없고...”
좌중의 한 사람이 내 말을 이렇게 받았습니다.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다는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중국에서 황사가 크게 덮쳐 온답니다.”

낮에는 광화문 네거리를 걸었습니다. 교보빌딩 앞에는 라일락이 몇 그루 있습니다. 무심코 그냥 지나치다 코끝을 찌르는 향기에 흠칫해서 고개를 들었더니 보랏빛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런데 라일락 나무 옆을 지나가는 몇 사람의 젊은 여성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 좋은 향기를 못 맡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요즘 나오는 미세먼지 필터 기능을 가진 마스크를 끼면 라일락 향기도 스며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우리 사회가 미세먼지에 이토록 민감해진 건지 헷갈립니다. 올해 미세먼지가 특별히 많이 발생하는 건지, 아니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세먼지 대책을 걱정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는 1980년대부터 스모그가 서울 공기를 뿌옇게 색칠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스크도 안 낀 채 잘 돌아다녔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미세먼지에 민감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째 이유는 미세먼지 측정 기술과 장비가 더욱 정교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기오염’ 또는 ‘스모그’란 단어로 공기의 질을 표현했습니다. 기상청이 예보하는 측정치보다 사람들은 하늘을 내다보고 오염 정도를 목측(目測)했던 겁니다. 그런데 삼사 년 전부터 미세먼지 측정이 정밀해지고 먼지 굵기에 따라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분류해서 예보하면서 미세먼지에 더욱 민감해졌습니다.


둘째 이유는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폐해입니다. 호흡에 의해 초미세먼지가 허파 세포에 흡수되어 심장질환과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의학계의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미세먼지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급증했습니다. 특히 임산부가 마신 미세먼지가 태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오면서 젊은 여성들이 임신을 꺼리는 경향이 빅데이터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셋째 한국인들이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은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평균적인 측정치는 없지만 미세먼지의 40~50%는 중국에서 발원한다는 것이 과학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불신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연히 나타납니다.

이제 미세먼지는 한국인의 생활 구석구석을 깊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출근하기 전에 아침 뉴스에서 미세먼지를 우선 체크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뉴스가 아니라 카카오톡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세 먼지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나들이를 하는 시대가 된 듯합니다.

마스크는 감기에 걸리면 어쩌다 사용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거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필터 기능에 따라 'KF80' 'KF99' 등 알아먹기도 힘든 마스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개에 1만8,000원씩 하는 미세먼지 필터 마스크도 잘 팔린다고 합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과 의학적 정보가 많아질수록 마스크 업체는 더욱 고급화된 제품을 개발할 것이고 시민들의 부담은 커질 것입니다. 한번 세탁하면 미세먼지 필터 기능이 크기 떨어진다니 마스크 소비를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추세로 사람들이 미세먼지에 민감해진다면 마스크 구매에 쓰는 비용이 통신비를 능가할지 모릅니다. 화생방훈련에 쓰이는 방독마스크 같은 것들도 나온다니 앞으로 서울 거리가 기묘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세먼지를 방지한다고 문을 닫는데, 이게 초미세먼지 방지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공기가 들어오는 틈만 있으면 공기 중의 미세먼지는 아무 방해받지 않고 실내로 침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서울의 고급 백화점에 가보면 전에 없이 넓어진 게 공기청정기 전시 매장입니다. 종류도 많고 값도 천차만별이고 비쌉니다. TV세트,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이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처럼 곧 공기청정기가 그 대열에 합세할 것입니다.


최근 좀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수소차 ‘넥쏘’의 판매 예약을 받았는데 하루 만에 신청 대수가 733대나 몰렸습니다. 이 차의 가격은 7천만 원대입니다. 이렇게 신청자가 몰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소차 넥쏘가 탁월한 미세먼지 필터 기능이 있다는 현대차의 홍보도 먹혀들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이 이 차를 타고 달리면 자동차 안에는 미세먼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세먼지가 생활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로 야구 경기가 취소됐습니다. 이제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학교도 쉴 것입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병가가 허용되는 시대가 올지 모릅니다. 좀 역설적이지만 ‘아는 게 병’이라는 속담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