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0도, 뜨거운 태양 아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찻잔을 앞에 두고 어머니가 "사월초파일이 언제야?" 하고 물으셔서 동석한 아우와 크게 웃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이니까요.
어머니와 헤어질 때 쯤엔 햇살의 열기가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늘 생기발랄하시던 어머니도 미수를 넘기며 힘이 많이 빠지셨습니다.
산책로 양편의 꽃들도 엊그제 같지 않았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를 절감하게 하는 시절입니다.
헤어졌어도 어머니는 아직 저를 떠나시지 아니합니다.
육십 년이 넘은 우리의 인연이 물리적 이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나 봅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며 이 책 저 책을 뒤적입니다.
사월초파일이라 그럴까요? 성철 스님의 시자였던 원정 스님이 쓴 <중 보러 절에 오지 마!>가 눈에 들어옵니다.
짤막짤막한 글들을 읽어봅니다. 맨 처음 글의 여운이 깁니다. 요즘 제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
그런가 봅니다. 아래에 옮겨봅니다.
1. 음식은 영양실조 안 될 정도,
옷은 살 안 보일 정도,
공부는 밤이 새도록
스님이 늘상 하신 말씀 중 가장 크게 강조하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음식은 영양실조 안 될 정도로만 먹어라.
둘째, 옷은 살 안 보일 정도면 된다.
셋째, 공부는 밤이 새도록 해야 한다.
사실이지, 큰스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신 그대로 하셨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그 말씀을 건성으로 들을 수 있겠는가.
스님께서는 밤새워 공부하다가 혹시 졸음이 오면 추운 겨울이라도 온 산을 헤치고 다니시다가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춰 내려오시곤 했다. 그때마다 모자와 눈썹에 서리가 하얗게 앉아있는 모습을 뵙곤 했는데, 스님의 그런 모습을 뵐 때마다 감히 그 경지를 따라 갈 수 없을 것 같아 아득해지곤 했던 것이다.
스님께서 평생을 누덕누덕 기운 분소의(糞掃衣)* 한 벌로 지내셨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거니와, 원래
골격이 장대한 스님의 체격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꼭 필요한 만큼만 드셨다.
스님께서는 인간이 태어나서 잠을 자는 것은 삶의 멈춤이요, 죽은 시간이라고 강조하셨다. 많이 먹으면
식곤증으로 졸음이 오는 것 또한 사실이니 최소한도의 수면과 적은 양의 식사는 수행자로서의 기본이고 철칙인
것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식욕이나 수면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그만큼 끊기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늘 잠이
모자라는 수행자 시절에는 틈만 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고, 절고기라고 불리는 두부라도 부치는 날에는 그
냄새만으로도 신이 났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수행의 연수가 늘어나면 이런 습성들도 차츰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 뿌리는 깊은 것이어서 아주 없애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스님만큼은 그 어려운 것을 철저하게 지키신 몇 안되는 현세의 수도자임에 틀림이 없다.
*분소의(糞掃衣) : 세상 사람들이 입다 버린 헌 옷을 가지고 만든 가사를 일컫는 말. 욕심을 없애기 위해 검소하는 마음을 닦는 뜻으로 입는 법의(法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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