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문재인 정부와 아시아의 '네 마리 용'(2017년 5월 11일)

divicom 2017. 5. 11. 07:54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날 보여준 행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자유칼럼이 보내준 칼럼에서 김수종 선배는 문 대통령 정부가 

'더불어'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피력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로서 대통령이 된 대통령, 

그가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더불어'를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의 희망이 현실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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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를 문재인 정부의 키워드로

2017.05.11

문재인 대통령 취임으로 지난 5개월간 공백에 빠졌던 국가 리더십이 회생했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 대통령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후 150일간 지속되어온 정국 혼돈은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취약성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나라의 시련이었습니다. 어쨌든 민주주의의 역동성으로 정국 혼돈이 마무리된 게 참 다행이고, 자유민주주의발전을 위한 값진 경험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인 중에 홍콩의 다국적기업 IT 부서에 근무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가 5월 초 휴가를 받아 서울에 왔을 때 만났습니다. 어린이날 광화문 교보센터 1층에서 그와 함께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홍콩 생활을 들었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싱가포르에서 4년을 살았고, 홍콩으로 이주하여 4년을 지내고 있는 3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글로벌 시대이긴 하지만 특이하게 싱가포르와 홍콩이라는 아시아의 두 도시에서 지낸 경험을 갖게 된 것입니다. 

“투표 어디서 하느냐?”고 묻자 그는 홍콩에 재외국민을 위하여 마련된 투표소에서 이미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변동을 얘기하며 홍콩 한국인들의 촛불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역동성과 홍콩의 조심성을 대비해서 두 곳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교보문고 카페에 앉아 밖을 보면 창밖의 라일락과 연두색 싹을 활짝 틔운 느티나무가 보기에 좋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서울은 공간이 활짝 트여서 좋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배후의 자연 공간이 여유롭지 않은 홍콩은 숨이 꽉꽉 막히고 집값이 하늘을 찌를 듯이 비싸서 미래가 답답해진다는 것입니다. 

집값 얘기가 나와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홍콩섬 건너편의 구룡반도인데 비교적 집값이 싼 곳인데도 7평 아파트에 매월 집세 110만원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집값이 비싸다보니 아파트 셋집에 살면서 방을 다시 세주는 주민들이 참 많다고 합니다. 

“홍콩은 국제도시로서 다양성과 생명력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은 여행자들이 보는 홍콩의 모습과 주민들이 생각하는 홍콩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홍콩의 문제는 정체성과 민주주의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중국인과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한다고 합니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로 반환된 지 20년이 됐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것입니다. 홍콩의 권위 있는 여론조사기관이 공표한 것을 보면 홍콩 주민 중 18%만이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42%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제가 싱가포르에서도 살아봐서 느끼는데 홍콩과 싱가포르는 환경적으로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정치적 자유 또는 민주주의의 제약이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밖에서 보니 민주주의 역동성이 느껴지는 곳이 서울이고 한국입니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제약은 싱가포르의 일당정치와 홍콩의 중국정부 간섭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와 이야기 하다가 불현듯 ‘아시아의 4마리 용’이 생각났습니다. 이 말이 화두에서 사라진 지 참 오래된 것 같습니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매스미디어와 일상 대화에서 무척 많이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서양 언론이 썼던 이 표현에 한국인들이 으쓱대며 자존감을 느꼈던 시절이었습니다. 

젊은 세대에겐 생소하겠지만 ‘아시아의 4마리 용’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입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동남아시아는 식민시대의 잠에 파묻혀 있을 때 수출 주도의 산업을 일으켜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로 뛰쳐나온 것이 이들 ‘4마리 용’이었습니다. 공산주의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시장개방과 이들 ‘4마리 용’의 권위주의 리더십이 조응(照應)한 결과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21세기 들어서 ‘4마리 용’이란 말은 국제정치 또는 국제경제의 무대에서 별로 거론되지 않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고속성장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인도가 괄목할 경제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수많은 용이 아시아 지역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마리 용’은 개발도상국이란 명칭을 붙이기에 미안할 정도로 산업이 양적 질적으로 고도화했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4만~5만 달러에 이르고 한국과 대만은 아직 3만 달러에 못 미쳤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경제력으로 볼 때 매우 괜찮은 나라들입니다. 

‘4마리 용’이란 말에는 순전히 경제성장만을 뜻하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발전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홍콩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민주주의가 제약받고 있으며 싱가포르도 반세기 전 리콴유 전 총리가 만든 일당독재가 국민을 지배합니다. 홍콩은 30년 후 중국에 완전 흡수되고, 중국의 팽창으로 대만은 정체성의 위기가 깊어지니 갈수록 존립이 불안합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아직 3만 달러에 턱걸이 수준이지만 ‘4마리 용’이란 말을 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11위의 경제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며 자유민주주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북핵문제 등 안보 불안이 무거운 도전이지만 한국은 매우 괜찮은 나라로 도약할 여건을 갖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9일 밤 광화문에서 자신의 정부를 ‘더불어 민주당 정부’라고 불렀고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더불어’라는 말이 단순한 접두사가 아닌 문재인 정부의 키워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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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