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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자들 성명서(2016년 12월 21일)

divicom 2016. 12. 21. 21:39

제 기억이 맞다면 저는 1990년 4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연합통신(지금의 연합뉴스) 국제국 해외부 기자로 

일했습니다. 그 전에 일했던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에서 꼭 12년 동안 기자 노릇을 한 다음

15개월을 쉬고 다시 연합에 들어갔던 것이지요.


연합에서 보낸 시간은 KT에서 보낸 시간의 4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훨씬 더 길고 괴롭게 느껴졌습니다. 

부자유와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몸은 KT에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했지만,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만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사직을 만류하는 조남도 상무님께 '저는 장미인데 이곳은 쓰레기통입니다. 장미를 쓰레기통에 넣으면 장미도 쓰레기가 되지요. 그래서 그만둡니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크게 놀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흐르고 회사의 이름도 바뀌었기에 분위기도 달라졌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연합뉴스 기자들이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고 하니까요. 


23년 전 연합을 떠날 때 저는 사직서에 회사의 인사 정책에 문제 -- 저와는 상관 없는 인사였지만 --가 있어서 

사직한다고 썼는데, 오늘 성명서를 읽어보니 여전히 인사가 엉망인가 봅니다.


시간은 어디서나 흐르는데 왜 연합에서만 흐르지 않는 걸까요? 

아래는 서울신문 인터넷판에 실린 관련 기사입니다.



연합뉴스 기자들 성명서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


연합뉴스 소속 기자들이 21일 성명서를 내고 “분노가 아니라 치욕으로 고개를 들 수 없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연합뉴스의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기자들’ 소속 연합뉴스 기자 97명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최근 3년간 사내의 불공정 인사와 불공정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이들은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공정언론·공정인사를 회복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현재 보도 행태가 잘못됐고, 이를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비선실세 최순실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일방적 주장’이라고 데스크가 주장하고, 청와대가 구매해 논란이 된 유사 프로포폴을 이명박 정부 때도 샀다며 제목이 ‘물타기’돼도 우리는 끝까지 싸우지 못했다”며 “젊은 기자들은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또 “공정보도를 이끈 노조위원장과 파업에 적극 참여한 선배가 보복성 인사로 전보되고,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한 기자들은 승진에서 누락됐다”며 “불공정 보도는 불공정 인사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합뉴스는 ‘공포정치’로 권력을 휘두르는 경영진이나, 부당한 취재의 지시로 공정성을 저해한 간부들의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젊은 기자의 것이자 독자들의 것이며, 시민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성명 전문.

<성명>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공정언론·공정인사를 회복하라

우리 젊은 기자들은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사를 데스크가 난도질해도, 국정교과서를 ‘단일교과서’라고 쓰라는 지시가 내려와도, 대다수 시민단체와 한 줌도 안 될 관변단체를 1대 1로 다루는 기사가 나가도 우리는 항의하되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영문 피처 기사는 우리나라에 좋은 것만 쓰라’는 편집 방향이 세워져도,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데스크가 주장해도, 청와대가 구매해 논란이 된 유사 프로포폴을 이명박 정부 때도 샀다고 기사 제목이 ‘물타기’ 돼도 우리는 분노하되 끝까지 싸우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국가기간통신사가 아니라 국가기관통신사가 아니냐는 바깥의 야유에도 우리는 제대로 분개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심지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언론사에 광고를 미끼로 부당한 압력을 가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던 바로 그 당일에도 삼성 관련 기사 두 건의 제목이 ‘톤 다운’된 데 이르면 우리 젊은 기자들은 분노가 아니라 치욕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여 묻는다. 부끄러움은 왜 언제나 우리의 몫인가.
경영진도 편집국 간부도 그 어느 누구도 ‘바른 언론 빠른 통신’ 국가기간통신사의 얼굴에 먹칠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후배들의 오해다’, ‘일선 기자의 취재가 부족한 탓이다’. 끝없는 변명 그 사이에서 우리의 소중한 바이라인은 갈가리 찢겼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으로 정권에 기대 불공정을 일삼는 것은 결국 회사의 미래를 갉아먹는 해사행위라는 것을 경영진은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고집하는 것인가.

불공정보도가 불공정인사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여기 아무도 없다.
‘사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던 경영진은 취임 첫 해 몇 차례인가 희망퇴직을 시행하더니 급기야 한 선배를 해고했다. 세계적 특종을 한 다른 선배는 ‘일할 수 없는 환경’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공정보도를 기치로 파업을 성공적·평화적으로 이끈 노조위원장과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다른 선배는 원래의 일터에서 먼 지역으로 ‘보복성’ 전보됐다.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한 기자들은 승진에서 누락됐다.

경영진은 중대한 잘못뿐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도 기자들에게 경위서를 요구했다. 경영진 취임 이후 사내게시판에 경위서 양식이 새로 올라왔을 정도이니 그 ‘공포정치’의 전말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기준도 알 수 없는 부당한 인사평가도 강행하려 한다. 성과급제도 시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기수별 성명’이 두려워서인지 수습 기자도 2년째 뽑지 않는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법원은 기자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영진은 공정보도와 사내 민주화에 대한 조합원 평가에서도 모두 낙제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경영진은 법원 판결도 조합원들의 평가도 모두 ‘일방적 주장’으로 판단한 듯 끝내 승복하지 않았다.

연합뉴스는 3년간 ‘공포정치’로 권력을 휘두르는 경영진의 것이 아니다. 연합뉴스는 부당한 취재 지시로 공정성을 저해한 간부들의 것도 아니다. 연합뉴스는 우리 젊은 기자들의 것이며, 독자들의 것이며, 시민의 것이다.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요구한다.

1. 공정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보장하라.
1. ‘공포정치’를 거두고 ‘낙제점’을 받은 사내민주화를 개선하라.
1. 기준도 알 수 없는 인사평가를 거두고 성과급제 방침을 철회하라.
1. 부당한 해고와 보복성 전보를 지금이라도 취소하라.
1. 회사의 미래를 위해 수습기자 공채를 재개하라.
1. 비정상적인 편집국장 직무대행 체제를 끝내고 기자들의 신뢰를 받는 새 편집국장을 임명해 정상화하라.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221500167&wlog_tag3=naver#csidx37d8ed5d635292faa967e448f4b77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