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기름장어' 반기문(2016년 12월 24일)

divicom 2016. 12. 24. 22:30

어린 시절 '세계 3대 성인'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예수, 석가, 공자. 

그때만 해도 예수를 '사람의 아들'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내일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오늘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와 대한문 앞의 '박사모' 시위를 보니, 

요즘이야말로 성인이 태어날, 혹은 태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입 가진 사람 모두 입을 열어 시끄럽고, 자격 없는 사람들이 큰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세상을 더 어지럽게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나라는 아직도 내리막 길을 내닫는 롤러코스터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새누리당의 떠벌이 하나가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더니, 엊그제는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제 한 몸을 불살라서' 운운하는 표현으로 웃음을 샀습니다. 여차여차 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던 사람은 

막상 그런 상황이 되자 손에 장을 지지는 대신 말을 바꿨습니다. 반기문 씨도 결코 나라를 위해 몸을 불사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냥 행동하지 말로 하지 않으니까요. 


박근혜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나라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든 국민이, '기름장어' 반기문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다시 우울한 세계에 웃음을 선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한겨레 신문에서 본 반기문 씨 '해부' 기사입니다. 

기사가 길어 줄여서 옮기고, 줄인 곳은 말없음표(...)로 표시했습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75889.html?_fr=sr1#csidx2e269b03aab5c188aeed43c19acc199 


12가지 열쇳말로 풀어본 기름장어의 꿈


...반기문 총장은 20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을 불살라서라도 그걸로 갈 용의가 있다”며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언론이 대서특필했고 정치권과 여론이 요동친다. 반 총장은 “퇴임 뒤 ‘생산적 글로벌 시민’(productive global citizen)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5월31일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으로,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글로벌 원로’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길을 걷고 

싶다는 것이다. 모험이다. 반 총장의 사회적 고향인 한국 외교부의 젊은 외교관들은 최근 ‘영원한 유엔 사무총장으로 남아주십시오’라는 연서명 서한을 반 총장한테 보내는 ‘집단행동’을 추진하다 접었다고 한다. 1월15일께 귀국해 전국을 돌며 ‘귀국보고회’ 형식의 ‘강연 정치’에 나설 계획인 ‘반기문’을 12개의 열쇳말에 기대어 풀어봤다.

...

노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헌신적이었다. 정무적 부담을 무릅쓰고 유엔 사무총장 선거 때까지 
반 장관의 임기를 보장했다. 정상외교와 순방 일정을 ‘반기문 선거운동’에 적합하게 조정해 각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선거운동을 했다. 이집트·알제리·아랍에미리트·코스타리카·아제르바이잔 등 한국 대통령이 한번도 가지 않은 나라까지 찾아다녔다. 반기문은 2006년 10월14일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고, 그해 11월10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헌신적인 도움이 아니었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불가능했을 것”(전직 외교부 장관)이라는 
평가는 과하지 않다.
...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영원히 숨을 멈췄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충격·분노·슬픔이 한국 사회를 덮쳤다. 
이명박 정부의 한승수 국무총리와 참여정부의 한명숙 전 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반 총장은 고 노 대통령 영결식(2009년 5월29일 경복궁 앞뜰)에 참석하지 않았다. 
유족 등의 간곡한 요청에도 영상·서면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장의위원회 고문에 이름을 올린 게 전부다.

반 총장은 그 뒤 여러 차례 방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2011년 8월 김진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반 총장을 향해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두달 뒤 제주를 다녀가면서도 김해(봉하마을)에는 들르지 않더라. 인간적으로 실망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 총장은 그해 12월1일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처음으로 참배했다. 그런데 반 총장은 자신의 묘소 참배를 대외비, 곧 언론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개인 휴가 때 이뤄진 비공식 일정”(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12일 <시비에스>(CBS) 인터뷰)이라는 게 이유였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게 대외비로 할 일인가”(<한겨레21> 1131호 인터뷰)라고 힐난했다. 참여정부 사람들한테 ‘인간 반기문’은 ‘배신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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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은 흔히 ‘세계의 대통령’에 비유된다. 실상은 다르다. 국가원수의 예우를 받되, 주요국 국가원수만큼 

권력이 강하지 않다. 유엔헌장은 사무총장을 “수석행정직원”(97조)이라 규정한다. 사무총장을 뜻하는 ‘Secretary Genaral’은 ‘비서’(Secretary)와 ‘장군’(Genaral)의 결합어다. 리더이자 비서, 이게 유엔 사무총장의 몫이다. 사무총장이 ‘세계의 조력자’(Global Facilitator)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31일로 임기를 마치는 반 총장이 ‘세계의 조력자’로서 거둔 가장 큰 성과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이 협약은 2015년 12월12일 195개국이 서명했는데, 발효까지는 2~3년이 걸리리라 예상됐다. 그런데 발효 최소 요건인 ‘55개국 이상의 비준’과 ‘세계 배출량의 55% 이상 비준’을 충족해 11월4일 정식 발효됐다. 온실가스 1·2위 배출국인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략적 결단, 반 총장의 리더십이 기반이 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으로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해 반 총장을 

‘2016년 세계 사상가 100인’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반기문 10년’에 대한 유엔 안팎의 평가는 박하다. 반 총장 측근들 사이에서도 “레거시(길이 기억될 업적)가 

없다”는 자탄이 나온다. 이미 많이 알려진 “어디에도 없는 사람”(<포린 폴리시>·2009년) “유엔의 투명인간”

(<월스트리트 저널>·2009년, <프랑스24>·2016년) “무력한 관찰자”(<뉴욕 타임스>·2013년) “미국의 푸들”(<폴리티코>·2014년) “가장 둔하고 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이코노미스트>·2016년)이라는 민망한 험담이 줄을 이었다. 세계적인 유엔 전문가로 꼽히는 토머스 와이스 뉴욕시립대 정치학과 대학원 주임교수는 “10년 동안 반 총장의 레거시(업적)가 뭔지 얘기할 게 없다”고 평했다.(<한겨레> 6월20일치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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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과시해왔다. 둘이 함께 참여한 국제회의에선 예외없이 만났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유엔개발정상회의 참석차 뉴욕에 갔을 땐 나흘간 7차례나 만났다. ‘박·반 연대’, 곧 박 대통령이 여권의 대선후보로 반 총장을 밀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반 총장도 적극 화답했다. 반 총장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2015년 9월26일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 반 총장의 연설이 

끝나자 박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는 “감사하다”고 했다. 올해 1월1일엔 박 대통령한테 전화를 걸어와 

“(한국-일본)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합의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할 말이 아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CEDAW)는 3월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정부의 12·28 합의가 “위안부 이슈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는 접근은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을 충분히 취하지 않은 것으로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심적 고통을 주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최종 견해’를 밝혔다.


‘세월호 7시간’은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다. 반 총장은 2014년 4월29일 뉴욕총영사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조문 왔다. 그뿐이다. 반 총장은 그 뒤 한국에 왔을 때 세월호와 관련한 추모·기억의 상징적 공간인 팽목항·안산·광화문 어느 곳도 찾아간 적이 없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뒤 ‘박·반 연대’는 풍비박산이 났다. 반 총장이 뒤늦게 “신뢰가 배신당했다”며 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16일 미국 외교협회(CFR) 초청 간담회)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의 서로를 향한 ‘열렬한 구애’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라 할 만한 표변이다. 영국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반 총장을 두고 “강자에 대한 진정성이 10점 만점에 3점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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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갤럽이 매달 진행해온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6월부터 ‘반기문’을 넣었는데, 단박에 1위(26%)를 차지했다.
5월 조사에서 20%로 1위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의 지지율은 반토막(10%)이 났다. 반 총장은 7~10월 넉달간 
27~28%의 지지율로 줄곧 1위를 내달렸다. 그러나 반 총장의 지지율은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가 본격화한 11월 21%로 주저앉았고, 12월 조사(6~8일)에선 20%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동률 1위였다. 촛불 민심이 반 총장의 지지세를 잠식하는 모양새다.

갤럽은 11월부터 문재인-반기문-안철수 3자 구도 조사를 병행하는데, 반 총장은 두달 모두 문 전 대표한테 밀렸다. 

11월엔 32% 대 33%, 12월엔 31% 대 36%로 격차가 커지고 있다. 갤럽이 공개한 이 조사의 상세 자료를 보면 반 총장의 지지세력을 가늠할 수 있다. 12월 조사에서 반 총장은 새누리당 지지자의 83%를 흡수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11%, 국민의당 지지자의 19%만 반 총장을 지지했다. 반 총장은 스스로를 보수라 여기는 이들의 50%를 흡수했는데, 중도라 여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32%를 얻어 문 전 대표의 38%보다 적었다. 60살 이상의 59%, 50대의 36%를 얻었다. 


반면 19~29살(18%), 30대(12%), 40대(22%)에선 지지세가 약했다. 대구·경북에서만 1위(40%)였고 고향인 충청을 포함해 다른 지역에선 문 전 대표에게 밀렸다.(상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누리집(nesdc.go.kr) 참고)

11월 조사 결과도 큰 틀에서 흐름이 유사하다. ‘새누리당·노령층·보수·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늙은 보수’ 이미지다. 반 총장의 ‘박·반 연대’ 이미지에 더해 5월 하회마을과 김종필 전 총리 방문을 통한 ‘대구·경북+충청 연대론’ 띄우기가 정치적 확장성을 스스로 좁힌 ‘전략적 오류’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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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1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미국대사는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는 비밀 전문을 본국 정부에 보냈다.(위키리크스 2011년 4월28일 공개) 버시바우는 이 전문에서 반 총장을 “매우 유능한 외교관”이자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naturally sympathic to all things American)”이라고 평가했다.

반 총장이 미국한테만 나긋나긋한 건 아니다. 그는 사람을 모질게 대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외교장관 때 휴일에 과장을 관사로 불러 보고를 받고는 “수고했어. 쉬는 날 정말 미안해”라고 했다 한다.(외교부 국장급 간부①) 그래서 ‘적이 없는 사람’, 정확히는 “적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전직 외교부 장관)이라는 평이 많다. 외교부 북미국장 시절 
부친상 때 각계의 조화가 100개를 훌쩍 넘긴 일화가 시사하듯 마당발이다.(외교부 국장급 간부②) 반 총장은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냈다. 버시바우가 2006년 비밀 전문에서 “반 장관은 한국 엘리트 교육의 산물이며 한국 외교부 시스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평했을 정도다.

‘예스맨·외교관’ 기질은 반 총장의 ‘정치적 약점’이다. “외교관은 정치와 캐릭터가 맞지 않는다. 정치는 돌다리가 없어도 물에 빠지면서도 건너가야 하는 것인데 외교관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너간다.”(이해찬 전 총리, 6월5일 재미동포 간담회) 역대 대통령을 깊이 분석해 ‘한국 정치의 책사’로 불리는 전직 장관은 “직업 외교관은 후천적으로 길러진 특성이 있다. 외교관은 본국과 주재국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하는 사람이다. ‘제3자 의식’이 있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대통령을 하기에 적합하지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