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새미 리 타계(2016년 12월 5일)

divicom 2016. 12. 6. 11:14

존경하는 수영선수 새미 리(Sammy Lee) 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96세.

캘리포니아에서 한국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새미 리는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다이빙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등 스포츠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편견과 차별을 이겨낸 이민자들의 영웅으로 더욱 존경받았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처음에 그는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영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이민자였지만 이렇게 말씀하셨다니, 역시 유전자의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조들의 인종적 배경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훌륭한 미국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인종 사회인 이 미국에 아시아인의 훌륭한 자질을 심어주는 것, 그것은 너의 의무다."


결국 새미 리는 미국의 다이빙 1인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 2연패를 이뤘고,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소망대로 의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53년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최고 아마추어선수에게 주는 설리번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러지며, 내년 1월 중순경 모교인 남가주대학(USC)에서 추모 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의 명복을 빌며, 아래에 뉴스1의 관련 기사를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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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 다이빙 영웅 새미 리가 별세했다고 AFP통신 등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96세.

유가족에 따르면 새미 리는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투병하던 중 지난 2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리는 1920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한국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57㎝의 단신으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다이빙 10m 플랫폼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다이빙 금메달을 딴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같은 대회 3m 스프링보드 부문에서 

동메달도 석권했다.

그는 4년 뒤 열린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10m 플랫폼 정상 사수에 성공하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다이빙 부문 금메달 2연패를 달성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다이빙 부문에서 인종차별·편견을 물리치고 혜성처럼 등장한 리는 이후 

세계 이민자들의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다.

리는 은퇴한 이후 미국 다이빙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1984·1988년 서울올림픽 다이빙부문 2회 연속 

금메달 2관왕에 오른 그렉 루가니스를 비롯해 밥 웹스터, 팻 맥코믹 등을 키워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한 리는 1947년 미국 남가주대(USC) 의대를 졸업한 뒤 13년간 미 육군 군의관으로 

복무, 소령으로 제대했다. 1953~55년에는 전쟁의 참극을 겪은 한국에서 미8군 군의관으로 근무하며 

의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편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는 그의 이름을 딴 '새미 리 광장'이 있으며, 중부지역 제20초등학교는 '새미 리 박사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