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아무 글도 올리지 않은 지 나흘... 시시각각 새 소식을 양산해내는 사회에선
나흘이 넉 달 같아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고열과 몸살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천하여 입을 열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일은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떠나시고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꿈에나마 오시어 눈물을 닦아주셨고,
먼 곳을 순례하고 있는 친구에게선 아름다운 무지개와 하늘과 손글씨 가득한 엽서도 왔습니다.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의 아름다운 얼굴도 잠시 보았고, 12일 광화문에선 100만 인파의 함성을 들었습니다.
어젠 길에 누운 은행잎과 플라타너스의 향기와 함께 딸 노릇을 해주는 젊은 친구의 향기로운 선물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삶은 죽을 때까지 그려가는 온갖 빛깔의 파노라마 혹은 모자이크이겠지요.
오늘 tbs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FM95.1MHz)'에서는 외교관, 그 중에서도 '대사'에 대해 생각해보고,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가 함께 부르는 'Perhaps love' 등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었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 끝에는 인생을 얘기하는 공상과학영화
'미스터 노바디(Mr. Nobody)'에 나오는 버디 홀리의 'Everyday'를 들었고,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하는 '책방 산책' 에서는 한성우 교수의 <우리 음식의 언어>,
방송인 김제동 씨의 <그럴 때 있으시죠?>에 대해 얘기를 나눈 후 김광석 씨의 '행복의 문'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이문세 씨와 테너 박인수 씨가 함께 부르는 '겨울의 미소'였습니다.
11월 13일은 1970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씨의 기일이지만, 이 나라의 단세포적 언론이 그 사실을 상기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대사'를 옮겨둡니다.
대사
최근에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한국을 대표할 대사들이 바뀌었습니다.
대사의 임무는 외교로 국익을 최대화하고,
부임국가에서 조국의 이미지를 바람직하게 형성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하니 ‘대사’를 ‘외교관의 꽃’이라고 하겠지요.
외교관만 대사가 되는 게 아니고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대사가 된다고들 하는데요,
우리가, 우리가 만난 외국인을 보고 그 나라 사람이 좋다 나쁘다 하며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듯, 외국인들도 자신이 만난 한국인을 보고
한국 사람은 좋다, 나쁘다 하니까요.
나라 안에서 ‘대사’가 되는 일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일하는 여성은 아직도 여성 일반을 대표하는 ‘대사’와 같습니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하면 ‘여자들도 일을 잘한다’ 고 하지만
그 사람이 일을 못하면 ‘여자들은 일을 못한다’고 하니까요.
젊은이와 노인도 마찬가지여서, 젊은이 하나가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고,
노인 한 사람이 억지를 부리면 ‘나이 들면 다 억지를 부린다’ 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성과 나이와 정체를 대표하는 대사인데요,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사람들이 일반화를 하지 않게 되어,
이 원치 않는 ‘대사’ 노릇을 그만둘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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