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광화문, 장갑, 이종걸(2016년 11월 27일)

divicom 2016. 11. 28. 11:33

좋은 정부는 건강한 신체기관과 같습니다. 눈이 건강하면 눈의 존재를 잊고 위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면 위의 존재를 잊는 것처럼 좋은 정부는 존재 자체를 잊게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정부와 그 정부를 이끌고 있는 박근혜 씨는 

단 하루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상식을 어나기 때문입니다. 몸의 일부분에 병이 나면 일과에 차질이 빚어집니다. 정부가 고장나면 시민이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글다운 글을 쓰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토요일 저녁마다 광화문에 나가 박근혜 씨의 퇴진을 외치고 오면 노년에 들어선 몸이 탈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어제는 청와대가 멀지 않은 창성동 길에서 젊은 인파에 몸을 맡겼습니다. 박근혜 씨가 어서

청와대를 떠나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광화문 인파 속에서 존경하는 이종걸 국회의원을 만났습니다. 텔레비전으로 보며 받은 인상이 맞았음을 확인하며 가족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 의원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젊은데, 정치인들이 종종 풍기는 허세와 과장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수첩을 꺼내사인을 받았습니다. 제가 건넨 볼펜이 추운 날씨에 잘 나오지 않아 고생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펜으로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잘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어떻게든 써보려 애쓰던 모습, 한참 그 볼펜과 씨름한 후에야 자신의 펜을 꺼내던 예의바른 모습, 한 긒자 한 글자 정성껏 써내려가던 겸손한 태도... 무례와 포즈가 판치는 세상에서 목격한 성심이 가슴을 기쁨으로 채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추운 거리에서 한 시민의 요청에 그토록 성의있게 응해주신 이종걸 의원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지금은 안양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이지만, 다른 자리에서 모든 한국인을 위해 일하게 되시길 빕니다. 

 

이종걸 의원을 잘 모르는 분들은 꼭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예로, 감히 평하자면

'외유내강'의 전형 같습니다. 평소에는 말이 적고 온화해 보이지만 꼭 필요할 때에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지난 봄 테러방지법에 반대해 12시간 31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한 것, 지난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무효를 

선언한 것만 봐도 이 의원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tbs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에서는 손을 보호해주는 장갑에 대해 생각해보고, 박인희 씨의 '겨울 바다',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송창식 씨의 '우리는', 

그리고 영화 '밀정'에 나오는 드보르작의 슬라브무곡 2번 작품 72를 들었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와, 신용성 씨의 소설 <거인의 내력>을 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폴 칼라니티는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숨진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원래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영국에서 철학 석사를 받은 문학도인데, 생명현상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의과대학에 들어갔고, 신경외과에서 7년간의 수련의 생활을 하다 마지막 해에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에 따르면, 그는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라는 구절을 반복하기도 하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죽지 않는 것'... 그것이 아직 의미 있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명제이겠지요.

아래에 제 글 '들여다보기'를 옮겨둡니다.

 

장갑

 

김치를 담글 때면 고무장갑의 고마움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느끼게 됩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할 수 있지만

김치는 사람의 손으로만 담글 수가 있는데요,

고춧가루, 생강, 마늘 등 매운 양념과 짜디 짠 젓갈을

맨손으로 버무린다면 얼마나 아리고 아플까요?

 

고무장갑을 비롯해 모든 장갑은

다 손을 보호해주는 고마운 물건인데요,

추위를 막아주는 털장갑, 거친 노동에서 손을 지켜주는 면장갑,

자를 돌볼 때 사용하는 의료용 장갑 등

쓰임새도 다양합니다.

 

손을 보호해주는 장갑처럼

정신을 보호해주는 물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